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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대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해 자신의 고유한 무리를 찾은 이들만이 사랑하는 이의 본성을 발견해주고 그의 고유한 무리를 찾아줄 수 있다."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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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대결이 아니죠. 사랑과 대결은 대척점에 서 있는 관계 방식이죠. 하지만 어떤 사랑은 반드시 대결이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 간의 사랑이 바로 대표적일 겁니다.


사랑은 명백히 감정의 동조현상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상대의 감정에 휩싸이곤 하죠.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혼란한 감정에 휩싸이곤 하죠. ‘부모’가 그 ‘아이’를 사랑하려 할 때, ‘부모’ 역시 혼란에 빠지는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것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훈육'의 대상으로만 대하게 되는 거죠. ‘훈육’은 감정의 동조현상 없이 가능하니까요.


‘아이’를 사랑하려면 대결해야 합니다. ‘아이’의 혼란한 감정의 자장과 맞서 싸워, ‘부모’의 안정된 자장 안으로 끌어 들어야 하는 대결. ‘아이’가 아무리 혼란한 마음으로 휘청거려도 그것을 모두 방어해 내고, 더 공격적으로 ‘아이’를 안정된 마음으로 주저앉혀야 합니다. 이 대결은 결코 우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결을 회피하면 차가운 ‘사랑’은 ‘훈육’으로 전락하게 되고, 이 대결에서 진다면 ‘아이’와 ‘부모’는 모두 혼란(공멸)에 빠지게 됩니다. 오직 이 대결에서 승리할 때만 ‘아이’와 ‘부모’는 진정한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안정된 자장을 가진 두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다중체'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려 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대의 요동치는 감정을 고요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훈육과 공멸 넘어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려 한다면, ‘아이’와의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와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어른'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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