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퀘어(The Square, 2018) 루벤 외스틀룬드
루벤 외스틀룬드 :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몽골로이드 기타(2004)」로 데뷔 이후, 「분별없는 행동(2008)」 「플레이(2011)」, 「포스 마쥬어:화이트 베케이션(2014)」를 연출. 이후 「더 스퀘어 (2017)」와 「슬픔의 삼각형(2022)」을 통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회 수상했다.
외스틀룬드는 카메라를 총에 비유하며,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기능을 하는 매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외스틀룬드는 이미지가 단순 소비되는 방식을 비판하며 미디어 문해력literacy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감독이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적이다. 이 사실을 감독 본인도 부정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68혁명 세대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본인 역시 공산주의자다. 외스틀룬드는 자신의 영화가 “영화 형식을 빌려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일종의 트로이목마(자신의 존재를 위장해서 적군에 잠입하는 존재)”라고 밝힌 바 있다.
외스틀룬드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실천practice’적이다. 「더 스퀘어」는 스웨덴 베르나모의 반달로룸 미술관(Vandalorum)에서 열린 '더 스퀘어(The Square)'라는 전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는데, 이 전시는 외스틀룬드(‘칼레 보만’과 공동기획)가 기획했다.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자가 텍스트라는 매체 안에서 ‘실천’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진보를 꿈꾼다면, 마르크주의적 영화감독인 외스틀룬드는 영화(이미지)라는 매체 안에서 ‘실천’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진보를 꿈꾼다.
‘예술’도 ‘철학’도 ‘스퀘어(평면!)’ 안에 있지 않다. 어두컴컴하고 더럽고 위험해 보이는 ‘나선형의 계단’ 속에 있다.
1.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쉴레 그림 앞에서 한 참 서 있었다. 쏟아지는 온갖 감정들이 내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와보고 싶었던 레오폴드였던가? 보고 싶은 그림이 많았기에 여운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발길을 옮겼다. 발길을 옮겨 다른 그림 앞에 섰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은 쉴레 앞에 있었다. 언제 다시 레오폴드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헤어진 연인을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다시 쉴레 그림 앞으로 갔다.
수려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고풍스럽지만 촌스럽지 않은 ‘빈’이라는 도시처럼, 깔끔하며 반듯하게 차려입은 노부부가 쉴레 그림 앞에서 서 있었다. 노부부는 말없이 쉴레 그림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네들도 내가 느꼈던 것을 느끼고 있구나.’ 먼 타지에서 예술의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네들 뒤에 서서 쉴레 그림을 보았다. 그 장면 또한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저들처럼 나이 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술관을 돌아 나오다 노부부와 다시 마주쳤다. 같은 작품에 감응했다는 동료의식 때문이었을까? 미래의 나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네들과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노부부는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미술관에서 침팬지를 만난 것처럼 나를 쳐보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눈빛을 정확히 안다. 해외로 출장을 자주 다니던 시절,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가면 그리도 친절하던 호텔과 레스토랑 직원들이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나왔을 때 나를 보던 그 눈빛이었다.
레오폴드에서 그 눈빛을 다시 느꼈을 때, 불쾌하기보다 당황스러웠다. ‘그 노부부는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이 아니지 않은가? 쉴레 그림 앞에서 감응하던 모습은 다 거짓이란 말인가? 그들은 분명 예술을 느끼는 이들이지 않았는가. 미술관에서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어떻게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 수 있는 건가?’ 그 노부부는 정말 아름답고 고결하며 선량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날 레오폴드는 나에게 좀처럼 답할 수 없는 삶의 미스터리를 하나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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