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위험’ 사이에 ‘한계’가 있다.

‘안전 제일주의’자의 주짓수


“정말 열심히 하는데, 생각보다 실력이 안 늘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부상을 너무 걱정하니까 그렇지.”
“그럼 매번 다쳐야 돼요?”


주짓수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열심히 훈련하지만, 시합을 나갈 때면 매번 지는 일에 실망하고 답답해했다. 그 친구가 왜 실력이 잘 늘지 않는지 안다. 안정과 안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그런 그의 성격은 훈련이나 시합 때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훈련 중에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나오는 것을 불편해했고, 스파링이 조금이라도 격렬해지면 스파링을 멈추었다. 이런 태도로는 어떤 격기 종목에서도 실력이 늘기 어렵다.


몸과 몸이 격돌하는 격기 종목에는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가 있다. 부상을 너무 걱정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상의 위험성을 각오하고 훈련하는 만큼 실력이 는다. 예를 들어보자. 암바 캐치(암바 기술을 곧 걸 수 있는 상황)에 들어갔다고 해보자. 이때 바로 탭을 치는 사람이 있고,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다음에 더 연습해서 암바에 걸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지금 빠져나가겠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주짓수 실력이 느는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전자는 결코 알 수 없는 암바의 미묘한 타이밍을 몸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나 후자처럼 할 수 없다. 주짓수를 해본 사람은 다 안다. 팔을 돌려 나오려는 그 순간, 팔꿈치 인대가 다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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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카운터’를 익히기 어려운 이유


복싱 역시 마찬가지다. 복싱에 ‘크로스 카운터’라는 기술이 있다. 상대방이 주먹을 내는 타이밍에 자신 역시 주먹을 뻗어 상대방을 타격하는 기술이다. 복싱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상대가 주먹을 내는 그 절묘한 순간을 잘 포착해야만 ‘크로스 카운터’를 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싱을 배우며 가장 어려웠던 기술이 ‘크로스 카운터’였다. 이 기술은 단순히 더 열심히 운동한다고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크로스 카운터’를 익히려면 위험을 무릅쓸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주먹을 항상 안전하게 피하거나 막으려는 사람은 ‘크로스 카운터’를 익힐 수 없다. 내가 때릴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내가 치명적인 공격을 맞을 수도 있다는 태도가 있어야만 이 기술을 익힐 수 있다. 다쳐도 좋다는 각오가 있어만 크로스 카운터를 칠 수 있는 미묘한 타이밍을 익힐 수 있다.


‘안전 제일주의’자는 주짓수도 복싱도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다음 수준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부상은 불가피하다. “그럼 매번 다쳐야 돼요?” 이제 그 친구의 볼멘소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친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매번 “다쳐도 좋다!”는 마음으로 연습하면 실력이 늘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기질적으로 겁이 없거나 과도하게 공격적인 이들은 잦은 부상 때문에 오히려 실력이 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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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위험’ 사이에 ‘한계’가 있다.


부상은 역설적이다. 부상을 너무 회피하면 실력이 늘지 않지만, 부상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다치면 운동 자체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설적인 부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안전’과 ‘위험(부상)’ 사이에 ‘한계’가 있다. 너무 ‘안전’하지도 않고, 너무 ‘위험’하지도 않은 자신만의 ‘한계’ 지점이 있다. 바로 그 ‘한계’ 지점에 있을 때 기량이 향상된다.


부상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자세는 자신만의 ‘한계’ 지점을 잘 파악하는 일이다. 그 ‘한계’ 지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위험하지 않다면, 실력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엄혹한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말은 ‘안전’ 따위는 내다 버리고, 항상 ‘위험’ 속으로 돌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암바 캐치 상태에서 탭(포기)을 쳐도 좋고, 부상을 각오하고 돌아 나와도 좋다. 상대의 주먹이 나올 때 백스탭으로 물러나도 좋고, 위험을 무릅쓰고 카운터 펀치를 내도 좋다. 다만, 그 순간이 자신의 주짓수와 복싱이 그 자리에 머물 것인지, 실력이 늘 것인지를 가르는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는 있어야 한다. 이 깨달음이 자신만의 ‘한계’를 찾는 첫걸음이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주 섬세하게 ‘위험’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한계’는 도달하기 전까지 그것이 ‘한계’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각자의 몸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한계’를 찾아가는 일은 살얼음 위를 지나는 일과 비슷하다. 살얼음 위를 걸을 때 투박하게 걷거나 뛰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얼음이 깨져서 물에 빠져 버릴 테니까. 반대로 살얼음 위를 걷는 일이 두려워 제자리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랬다가는 영원히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될 테니까 말이다.


복싱을 잘하고 싶다면, 살얼음 위를 지나듯 아주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치명적인 부상은 피하고, 작고 가벼운 부상을 감내하겠다는 마음으로 한 번 한 번의 연습과 스파링에 임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한계’ 지점을 파악해 나가야 한다. 자신만의 ‘한계’ 지점을 알게 되었을 때, ‘안전’과 ‘위험’ 너머 고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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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이들만이 지혜로운 삶의 고수가 된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복싱을 할 필요는 없다. 각자에게 각자만의 삶이 있다. 누군가는 부상을 무릅쓰고 복싱 고수의 삶을 바라지만, 또 누군가는 그저 안전하게 복싱을 즐기는 삶을 바랄 수도 있다. 어떤 삶이 맞고, 어떤 삶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 이상의 복싱 실력을 바라지 않는다면, 굳이 부상의 위험을 무릎 쓰며 자신의 ‘한계’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꼭 복싱이 아니더라도,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두가 복싱의 고수가 될 필요 없지만, 모두가 삶의 고수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복싱의 고수만이 복싱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듯, 삶의 고수만이 진정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복싱은 부상이 없다면 늘 수 없고, 그 부상이 너무 커도 늘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의 ‘한계’를 깨달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들만이 복싱 고수가 된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위험’이 전혀 없다면 삶은 성숙할 수 없고, 그 ‘위험’이 너무 커도 삶은 성숙할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들만이 지혜로운 삶의 고수가 된다. 살기 넘치는 링과 야박하게 짝이 없는 삶에서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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