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즐거움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이제 정말 복싱을 그만해야 하는 건가?

마흔 즈음 부터였나? 자꾸만 실오라기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조금씩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았다. 망막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복싱을 계속해도 되냐고 물었다. 의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눈 쪽에 충격을 계속 가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느라 넣었던 안약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집필실로 돌아왔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싱을 한지 10년이 넘어간다. 어린 시절 이런저런 운동을 한 것까지 하면 30년 가까이 치고받는 운동을 해왔던 셈이다. 몸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가장 걱정되긴 했지만, 비단 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격렬한 스파링을 한 날이면,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았고, 무릎도 자꾸만 삐걱거렸다. 어느 날은 목이 돌아가지 않아서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고생을 해야 했다. 통증은 둘째 치고,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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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운동 강도를 낮추고 스파링을 조금 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대안인지 깨닫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만약 체육관에서 강도를 낮출 수 있고, 스파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벌써 복싱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은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다. 중간에 멈출 수 있다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체육관에 들어서서 몸을 풀고 섀도우 복싱을 하면 몸에 열기가 오른다. 그리고 옆에서 함께 운동하는 이들의 열정을 느낀다. 그때가 되면, 나도 모르게 온 힘을 다해 샌드백을 때리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링에 올라가 격렬한 스파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매일 반복되었고, 다음 날이면 또 몸 이곳저곳에서 ‘이제 복싱 좀 그만하라’고 아우성을 치는 일 또한 매일 반복되었다. 몸을 쉬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체육관을 나가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정말 복싱을 그만해야 하는 건가?’ 조금 우울해졌다. 복싱은 내 인생에서 큰 즐거움 중에 하나다. 그런 복싱을 이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우울함이 찾아들었다. 복싱만큼이나 철학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우울이 무엇인가? 주어진 삶의 문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그러니 우울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면, 주어진 삶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해야 할 시간이란 뜻이다. 복싱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잠시 내려놓고,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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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친구의 ‘담배론’


‘인생의 즐거움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인생에는 많은 즐거움이 있다. 그것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갑자기 담배를 아주 좋아했던 옛친구의 ‘담배론’이 생각났다.


“야, 세상에서 담배를 제일 맛있게 피는 방법이 뭔 줄 아냐?”

“뭔데?”

“일주일 동안 담배를 안 피다가 일요일 날 딱 한대 피는 거야.”


웃음이 났다. 삶이란 이리도 간명한 것이구나. 인생의 즐거움이란 그 친구처럼 누리는 거였다. 때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즐거움을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하는 거였다. 담배를 좋아한다고 매일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될까? 이는 그저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는 것일 뿐, 담배 한 대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뿐인가? 매일 담배를 피운다면, 그리 멀지않은 시간에 아예 담배를 필 수 없는 몸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일 테다. 그 친구는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에 관한 나름의 철학이 있는 셈이었다.


그 친구가 일요일에 딱 한 번 담배를 피웠다면, 나는 토요일 오후 딱 한 번 체육관에 나가기로 했다. 그 친구가 담배를 즐기기 위해 담배를 줄였듯, 나는 복싱을 즐기기 위해 복싱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명색이 철학자 아닌가? 그 친구의 철학보다는 조금 더 철학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헬스장을 끊었다. 헬스장에서 매일 운동했다. 때로는 근력 운동을 하고, 때로는 달렸다. 이는 복싱을 못하기 때문에 하는 운동만이 아니다. 복싱을 하기 위해서, 복싱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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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을 누리는 방법

진정으로 즐거운 일은 다 그렇게 누리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을 매일 먹으면 즐거울까? 바로 같은 소리다. 좋아하는 음식을 오래 즐기려면 때로 그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힘들게 운동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몸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속이 더부룩해진 불쾌감이 따라붙을 테니까. 기다림과 운동의 시간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그 음식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다. 음식보다 더 큰 즐거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을 매일 만나면 행복할까? 바보 같은 소리다. 철부지들의 사랑이 빨리 끝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그 사람이 좋다는 이유로 계속 붙어있으려고만 하기 때문 아닌가?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면, 그 사람을 애틋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람과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란다면, 고되게 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일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줄 작은 선물 하나 마련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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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준비하는 삶


그 어떤 기다림도, 노동도 없이 그 사람을 만나려 하는 건, 사랑의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아니라 사랑의 즐거움을 허망하게 소진하는 일일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행복하고 싶은가? 그 사람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기다림과 노동의 시간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사랑의 즐거움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복싱이든, 음식이든, 사랑이든 그것은 모두 즐거운 일이다. 이 즐거운 일들은 어떻게 누리며 살아야 하는가? 즐거움을 주는 존재들을 소중히 대하며 살아야 한다. 한 존재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기다림’과 ‘준비’이다. 다른 그 어떤 존재도 줄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존재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기다리고 준비하며 산다는 것이다.


마흔 중반으로 넘긴 내 몸이 앞으로 복싱을 얼마나 더 견뎌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복싱이라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기 위해 기꺼이 기다리고 또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에 기쁨을 주는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 역시 그렇게 대하고 싶다. 철학도, 글도, 사람도, 내게 즐거움 주는 그 모든 소중한 존재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살다 가고 싶다. 그 모든 존재들을 애틋하게 기다리며, 그 모든 존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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