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세계, ‘야만’의 세계
복싱은 배우기 어려운 스포츠다. 왜 그럴까? 복싱이 극심한 체력적 소진과 크고 작은 신체적 부상을 동반하기 때문일까? 물론 이는 복싱을 배우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복싱을 배우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복싱은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일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느 스포츠와 복싱이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축구를 하다가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부가적이거나 우연적이거나 결과일 뿐이다. 악의를 가진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도 상대를 다치게 할 목적으로 축구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싱은 다르다. 복싱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복싱에서 상대가 다치는 일은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결과다. 오히려 상대가 다치지 않는 일이 부가적이며 우연적인 결과다.
평범한 이들은 ‘문명’의 세계를 산다. ‘문명’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 무엇인가? 상대를 항상 배려하고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싱의 세계는 이와 정반대다. 복싱의 세계는 일종의 ‘야만’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복싱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상대를 다치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적용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복싱을 배울 때 정서적인 거부감을 겪게 된다. 바로 이 정서적 거부감이 복싱이 배우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다.
복싱은 정제된 ‘야만’의 세계다.
‘문명’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 복싱은 불편하고 불쾌한 일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얼굴을 맞게 되는 것은 얼마나 화가 나고 불쾌한 일인가? 복싱 초심자들의 스파링이 싸움으로 곧잘 번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때리는 것은 좋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문명’의 세계에서 자란 이들에게 누군가의 얼굴을 있는 힘껏 때리는 일은 낯설고 불편한 일이다.
복싱은 ‘싸움(야만)’이 아니다. 복싱은 분명 ‘야만’의 세계이지만, 이는 날 것 그대로의 ‘야만’은 아니다. 정제된 ‘야만’이다. ‘싸움’이 날 것 그대로의 ‘야만’이라면, 복싱은 정제된 ‘야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싱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상대를 다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를 효과적으로 다치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명’의 세계에 익숙한 이들은 정제된 ‘야만’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문명’의 세계에서 자란 이들이 복싱을 처음 접하게 되면 둘 중 하나다. ‘문명’ 상태에 있거나 날 것 그대로의 ‘야만’ 상태에 있거나. 복싱을 처음 접한 뒤, ‘문명’을 넘어서서 일단 ‘야만’의 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억압된 욕망이나 감정들이 무분별하게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복싱 초심자들이 스파링을 하다가 폭주해서 ‘싸움’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복싱의 역설이 있다.
‘체육관’은 ‘링’이 아니다.
복싱은 역설적인 운동이다. 복싱의 본질은 ‘야만’이다. 쉽게 말해, 복싱은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복싱을 할 때 자신도 상대도 다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한다. 복싱을 배우면서 자신이 다치면 복싱을 할 수 없고, 상대가 다치면 연습할 소중한 파트너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복싱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최대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다치게 하는 일이지만, ‘복싱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해주고 상대가 필요 이상으로 다치지 않게 배려해 주는 일이다. 복싱을 배울 때는 ‘야만’을 정제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야만’을 정제하는 법은 ‘링’과 ‘체육관’을 구분하는 일이다. ‘링’은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공간이지만, ‘체육관’은 그 ‘링’ 위에 올라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이 둘을 잘 구분하는 것이 ‘야만’을 정제하는 일이다.
복싱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다.
철없던 시절 복싱을 철저하게 개인 운동이라 생각했다. 링 아래서 고통스러운 훈련도 혼자 하는 것이고, 결국 링 위에 올라가서도 처절하게 싸우는 것도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마흔 너머까지 복싱을 하며 그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여실히 깨닫고 있다. 복싱은 그 어떤 팀 스포츠보다 더 팀워크가 중요한 스포츠다. 상대를 다치게 해야 하는 일은 결코 아무하고나 수련할 수 없는 까닭이다.
복싱은 서로를 배려하는 좋은 동료가 없다면, 결코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스포츠다. ‘링’ 위에서 상대를 다치게 하기 위해서는 ‘링’ 아래서 동료를 존중하며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다치게 해야 하는 스포츠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함께 운동하는 동료를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다치지 않게 배려해야 한다. 이것이 복싱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태도다.
철없던 시절은 지났다. 혼자 고독하게 세상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은 얼마나 유치한가? 어느 누구도 혼자 싸우지 않는다. 다만 함께 싸우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없는 철없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링 위에서 날카로운 원투로 상대를 다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링 아래서 동료들이 그 원투를 수도 없이 맞아주어야 한다. 철없는 이들은 그 소중한 이들을 보지 못한다.
복싱은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나름 철이 들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고독하게 홀로 세상과 싸우는 유치한 일은 접어두고, 좋은 친구들과 웃으며 함께 복싱을 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문명’의 세계와 ‘야만’의 세계를 횡단하며 ‘일상’과 ‘복싱’을 즐기고 싶다. 좋은 동료가 없다면 좋은 복싱도 없듯, 좋은 친구가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