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받아들이는 기쁨

‘싸움꾼’과 ‘운동선수’

복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싸움꾼’과 ‘운동선수’다. 복싱을 싸움으로 대하는 복서들이 있고, 복싱을 스포츠로 대하는 복서가 있다. 전자는 다혈질인 문제아였던 경우가 많고, 후자는 말 잘 듣는 모범생인 경우가 많다. 복싱하는 데 어느 부류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싸움꾼’과 ‘운동선수’는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싸움꾼’ 스타일의 복서는 배움이 약하지만, 기세가 좋다. 스파링이나 시합에서 기술은 부족하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 경우다. 하지만 이런 ‘싸움꾼’은 평소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거나 과도하게 흥분해서 스파링이나 시합을 망치곤 한다.


반면 ‘운동선수’ 스타일은 배움에 강하지만, 기세가 약하다. 이들은 스파링이나 시합에서 월등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상대 기세에 주눅 들어 압도당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 모범생처럼 성실하게 연습하고, 불필요하게 흥분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좋은 성적을 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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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복서


체육관에는 선수들이 많다. 그중 유독 애착이 가는 선수가 한 명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싸움꾼’ 쪽에 가까웠다면, 그 친구는 전형적인 ‘운동선수’ 부류였다. 그 친구의 복싱 자세는 교본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는 모범생처럼,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성실하고 정확하게 배우기 때문이었다.


나와 너무 달랐던 그 아이는 어떤 복서가 될지 궁금했다. ‘싸움꾼’처럼 천방지축으로 좌충우돌하며 복싱을 했던 나와 달리, ‘운동선수’처럼 차분하고 정석적으로 복싱을 했던 그 친구는 어떤 복서가 될지 궁금했다. 그것이 내가 그 친구에게 관심과 애정이 생겼던 이유였다. 그 친구가 프로 시합을 준비하던 종종 스파링을 하곤 했다.


‘운동선수’였던 그 친구는 나와 스파링을 할 때면 늘 주눅 들어서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곤 했다. 그것이 늘 안타까웠고, 걱정되었다. 프로 시합에는 나보다 더 지랄맞은 ‘싸움꾼’들이 득실거린다. 그런 ‘싸움꾼’들의 기세에 밀려 자신의 기량을 채 보여주지도 못하고 패배할까 봐 걱정되었다. 스파링이 끝나면, 그 친구에게 항상 이야기해 주었다. “기세 올리는 애들은 겁먹은 거다. 상대가 뭘 하던 네가 해왔던 대로 차분하게 네 할 것을 하면 된다. 네 주먹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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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과 ‘운동선수’ 사이


다행히도, 그 아이는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코뼈 골절과 안와골절. 시합을 끝낸 그 아이의 얼굴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술 후, 얼굴에 붓기가 빠지고 다시 훈련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체육관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코랑 눈 다 나았으니 스파링 한 번 하자.” “네” 장난기 어린 말에 그 친구는 항상 그렇듯 수줍게 대답했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조금 놀랐다. 예전에 모범생이었던 착한 눈빛과 주눅 든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 복서 특유의 압박감이 느껴졌고, 매 주먹 끝에는 날카로움이 묻어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펀치의 강도를 높이면 그 아이는 강도를 낮추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강도를 높이면 그 친구 역시 강도를 높여 되받아쳤다. 그 아이의 매 주먹이 마치 “이제 너한테 안 져!”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까지 그 아이와 했던 모든 스파링 중 가장 힘든 스파링이었다. 스파링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나 이겨 먹을라고 하더라?”

“아,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했나 봐요.”


좋은 복서는 ‘싸움꾼’도 ‘운동선수’도 아니다. ‘운동선수’처럼 성실하게 운동하는 ‘싸움꾼’이어야 하고, ‘싸움꾼’처럼 불물 안 가리고 싸우는 ‘운동선수’여야 한다. 그 아이는 혹독한 데뷔전을 통해 ‘운동선수’이면서 ‘싸움꾼’이 되었던 셈이다. 대견한 마음에 한마디를 덧붙여 주었다. “앞으로 링에 오를 때마다 항상 그런 마음이어야 한다. 상대가 누구든 다 부셔버린다는 마음으로 링에 올라야 한다.” “네” 링에 내려와 다시 모범생이 된 그 아이는 다시 수줍게 대답했다. 그 아이와 스파링을 끝내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소년이 복서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아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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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의 시절이 지난 후의 기쁨


그런데 그 기쁨만큼 하나의 아쉬움도 찾아왔다. ‘나는 이제 링 위 설 만큼의 투쟁심이 없구나.’ 언제부터인가 스파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예전이었다면,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 스파링을 할 때면 화가 났다. 나에게 항상 맞기만 하던 상대와 대등한 스파링을 했다면 잠을 못 잘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고, 때로는 묘한 기쁨마저 느낄 때가 있다.


관원들과 스파링을 할 때도 그렇다. 가벼운 스파링을 하기로 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쎄게 하는 분들이 있다, 투쟁심 넘치던 시절에는 ‘네가 먼제 쎄게 했으니 나도 똑같이 돌려준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거의 없다. ‘아이고, 뭘 저리 쎄게 하시나. 뒤로 빠지면서 받아 줘겠다.’라는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의 변화들은 내게 ‘남자’로서 투쟁심이 사라져서 생긴 일일 테다.


이런 마음의 변화들이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는 뭐랄까? ‘남자’에서 ‘할아버지’가 된 느낌이랄까? 물론 아직 ‘할아버지’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뜨겁던 남자로서 시절은 지나가고 있구나’라는 자각이 들었다. 내게는 이제 ‘링 위에서 내 앞에 서면 누구든 부셔 버린다’는 마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링 위에서도 사람들과 웃으며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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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받아들이는 기쁨


‘남자’로서의 투쟁심이 사라졌다고 곧장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로서의 투쟁심이 사라져서 열패감에 시달리는 ‘중년’이 되는 경우는 얼마나 흔하던가. ‘남자’로서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년’만이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 조금 아쉽지만, 이제 ‘남자’로서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할 시간이다. 나는 열패감에 찌든 ‘중년’이 아니라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


물론 ‘남자’로서의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누리며 살고 싶다. 하지만 ‘남자’로서 기쁨이 다한 후에도 억지스레 그것을 부여잡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 세월 흔적을 지우려 매일 두꺼운 화장으로 맨얼굴을 가리는 초라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발기가 되지 않는 시간이 왔을 때, 비아그라를 먹어가면서까지 발기에 집착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초라한 남자는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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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철학은 내게 투쟁심 넘치는 ‘발기’가 다한 후에도 여전히 기쁨이 남아있다는 삶의 진실을 알려주었다. 흔한 남자들이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발기’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발기’의 기쁨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기’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싶다. 그리고 ‘발기’의 시간이 지나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발기’가 안 되어도, 아니 안되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들이 있다. 자연과 삶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소중한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쁨들. 이러한 기쁨들은 ‘발기’의 기쁨만큼이나 우리네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기쁨이다. 이는 ‘발기’가 되던 시절에는 좀처럼 누릴 수 없는 기쁨이다. 투쟁심 넘치는 ‘발기’의 시간에 차분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요원하지 않겠는가.


세월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삶이 더 크고 깊은 기쁨을 누리는 삶이라고 믿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발기’의 뜨거운 기쁨을 누리고, 그 ‘발기’가 다 해갈 때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것을 받아들인 이들만이 ‘지혜’라는 은은한 하지만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링 위에서 조차 사람들과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최대한 많이 누리며 살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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