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싸워야 할까? 생각 없이 싸워야 할까?
“야!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 복싱을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코치나 관장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는 복싱을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혼란을 가중하는 말이다. 나 역시 첫 스파링을 할 때 관장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시키는 대로 했다. 생각 없이 본능대로 싸웠다. 그렇게 스파링이 끝나고 링에서 내려왔을 때 관장이 다시 야단치며 말했다.
“야, 생각 좀 하고 해!” 씨발. 언제는 생각하지 말고 싸우랬다가 또 이제는 생각하며 싸우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화가 났다. 아니 그건, 복싱의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나는 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내가 그 관장 나이만큼 되었을 때 비로소 관장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복싱 초심자들에게 “생각하지 말고 싸워!”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스파링 내내 뒷걸음질만 치거나, 눈을 감고 주먹을 휘두르는 막싸움이 된다. 초심자가 생각 없이 싸우면 이 둘 중 하나 이거나 아니면 스파링 내내 이 두 상태를 왔다 갔다 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초심자에게 “생각하고 싸워!”라고 주문하면 어떻게 될까? 길 잃은 아이처럼 주저하고 망설이느라 얻어맞거나, 나무 인형처럼 뚝딱거리며 움직이느라 얻어맞게 된다. 초심자가 생각 없이 싸우면 이 둘 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둘 다다.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생각 없이 싸우는 것도, 생각하며 싸우는 것도 복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복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복싱은 역설이 가득한 스포츠다. 그래서 체육관의 언어 역시 역설적인 경우가 많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는 말도, “생각 좀 하고 해!”라는 말도 모두 옳다. 즉 복싱은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생각해야 하며 해야 한다. 이 선문답같은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낯선 상대와 스파링을 한다고 해보자. “복싱은 기세 싸움이지”라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상대에게 돌진하면 어떻게 될까? 카운터 펀치를 맞고 나가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상대가 이렇게 하면 나는 저렇게 하고, 상대가 저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해야지”라며 온갖 생각을 하며 스파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상대의 공격에 반응이 늦어져서 얻어터지게 된다.
수준 높은 스파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에 관한 생각은 해야 하고, 자신에 관한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 다시 스파링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낯선 상대와 스파링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잽이다. 이 잽은 공격이라기보다 체크다. 잽으로 상대방이 나의 공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체크해야 한다. 그 반응을 보며, 상대가 인파이터인지 아웃복서인지, 어떨때 가드가 내려가는지, 카운터를 노리고 있는지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 생각이 있어야 상대에게 유효한 공격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유효한 공격 전략을 실행할 때, 자신의 동작에 대해서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링이든 삶이든, ‘너’를 생각해야 한다.
복싱은 찰나의 스포츠이다. 상대와 자신, 두 가지 생각을 모두 할 때 그 찰나를 포착할 수 없다. ‘앞 손이 나오면 나는 이렇게 공격하고, 뒷손이 나오면 나는 이렇게 공격하겠다’는 식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움직임도 생각하면서 나의 움직임도 생각하면 제대로 된 방어도 공격도 할 수 없다. 상대의 공격에 맞춘 자신의 반응은 생각 없이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에 관한 생각은 필요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자신에 관한 생각은 링 아래서 이미 끝나 있어야 한다.
링 위에서는 오직 상대의 움직임에 관한 생각만 해야 한다. ‘앞 손이 나오네’라는 생각만 해야 하고, 상대의 앞 손 나올 때 자신의 움직임은 생각 없이 직관적으로 나와야 한다. 자신의 움직임에 관한 생각은 링 아래서 충분히 연습해서 몸에 본능처럼 새겨져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복싱은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생각하며 해야 한다’는 역설의 풀이다.
이는 단지 체육관의 풍경인 것은 아니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소중한 타자를 만날 때,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에 관한 것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너’에 관한 것이다. 친구나 연인 혹은 자녀를 만날 때를 생각해 보자. 이때 소중한 ‘너’의 감정과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의 감정과 상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들은 결코 삶을 잘 살 수 없다.
좋은 삶이란, ‘너’와 함께 춤추는 삶
어찌보면, 복싱은 춤과 비슷하다. 복싱을 잘하려면 상대의 잘 리듬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느끼며 춤을 춰야 하는 것처럼, 복싱 역시 상대의 움직임을 잘 파악해야 한다.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삶을 잘 산다는 것은 소중한 ‘너’의 리듬을 잘 파악해서 ‘너’와 함께 즐겁게 춤추며 사는 일이다. 춤을 잘 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너’의 변화를 포착하고, 그에 맞춰 ‘나’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항상 자신 생각뿐인 이들은 어떤가? 그들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뒷걸음질만 치거나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느라 함께 춤을 출 수 없다. 또한 그들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길 잃은 아이처럼 주저하고 망설이거나 나무 인형처럼 뚝딱거리느라 함께 춤을 출 수 없다. 이는 링 위에서 자신의 움직임에 관한 생각만 가득하고 상대의 움직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이들이 복싱을 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체육관에서 삶을 배울 수도 있다. 복싱을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 삶도 잘살고 싶다면,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생각하며 살면 된다. 온 마음을 다해 ‘너’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가급적 ‘나’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물론 이 말이 자신을 함부로 대해야 한다거나 자신에 관해서는 어떤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관한 생각은 홀로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나’에 관한 생각은 ‘너’를 만나기 전에 이미 충분히 숙고되고 체화되어 있어야 한다. ‘링’ 위에서 생각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 관한 것이어야 하듯, ‘삶’ 위에서 생각 역시 ‘나’가 아니라 ‘너’에 관한 생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를 만났을 때, ‘너’의 반응에 맞춰 함께 물 흐르듯이 ‘춤’을 출 수 있다.
상대의 리듬을 느낄 때 복싱이 예술이 되는 것처럼, 삶 역시 마찬가지다. 소중한 '너'의 리듬 속에서 함께 출출 때 삶은 예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