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배움의 끝, '자기보정'

내가 복싱을 가르치는 방식

“아니야. 아니야. 맞아.” 초심자에게 복싱을 가르칠 때 반복하는 말이다. 어퍼컷을 가르치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어퍼컷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는 동작이다. 초심자들은 이 어퍼컷의 정자세를 잘 익히지 못한다. 어퍼컷을 치면서 상체와 함께 턱이 들리게 되거나 주먹을 과도하게 아래로 내려서 올려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때리는 위력은 줄어들고, 맞을 위험은 커지는 잘못된 자세다.


어퍼컷의 정자세는 주먹은 턱이나 관자놀이에 붙이고 몸통(골반)을 회전시켜 발생한 힘을 팔에 전달하여 짧고 간결하게 올려 치는 자세이다. 이런 정자세로 어퍼컷을 칠 수 있게 될 때 펀치의 위력은 커지고 상대에게 맞을 위험은 줄어들게 된다. 어퍼컷을 가르칠 때 이러한 동작을 반복하게 하고, 그 동작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동작이 바르게 수행되지 않을 때는 ‘아니야’라고, 동작이 바르게 수행될 때는 ‘맞아’라고 말해주는 일을 반복한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는 10개의 어퍼컷 중에 3개만 정자세였다가 나중에는 4, 5, 6, 7, 8개로 점점 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초심자에게 복싱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르침은 언제 끝나게 될까? 10의 어퍼컷 중 10개를 정자세로 해낼 수 있게 될 때일까? 그렇지 않다. 복싱은 그렇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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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의 ‘휠 어라이먼트’


어퍼컷을 가르치는 목적은 정자세를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스파링이 되었든, 시합이 되었든 실전 상황에서 어퍼컷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전은 늘 상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즉, 어퍼컷을 정자세로 연습해서 그것을 완전히 몸에 익혔다고 하더라도, 이는 상대와 상황에 맞게 조금씩 변형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복싱은 품세가 아니라 실전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정자세를 오래 익혔더라도, 그것은 변화무쌍한 실전 상황 아래서 조금씩 틀어질 수 있다. 예컨대, 키 작은(큰) 상대와 스파링을 많이 하면 어퍼컷의 자세가 조금씩 낮아지게(높아지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거울 보며 정자세를 연습해야 한다. 즉 때가 되면 미묘하게 틀어진 자세를 보정해야 한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휠 얼라이먼트(바퀴 정렬)’를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동차는 오래 타면 바퀴 정렬이 미묘하게 틀어지는데, 이를 주기적으로 보정해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자동차를 탈 수 있다. 복싱에도 ‘휠 얼라이먼트’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왜 그런가? 우선은 정자세의 틀어짐이 미묘하기 때문에 자세를 보정해야 할 적절한 시기를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자세가 습관처럼 굳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자세 보정을 스스로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정자세의 가르침은 언제 끝나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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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끝, ‘자기보정’

지도자에게 정자세를 배우는 일이 끝나는 때는 언제인가? ‘자기보정’이 가능할 때다. 이 ‘자기보정’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먼저 자신의 자세가 미묘하게 틀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틀어진 자세를 스스로 보정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기보정’이 가능할 때, 더 이상 지도자로부터 자세를 배울 필요가 없다.


복싱에서 이 ‘자기보정’ 능력은 중요하다. 이는 자신의 복싱 기량이 상승하게 되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배우면서 훈련하는 이들 역시 기량이 는다. 하지만 이들보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스스로 보완·수정하며 훈련하는 이들이 기량이 느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복싱을 가르칠 때 ‘아니야 맞아’를 반복하는 이유는 정자세 자체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자기보정’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정확한 자세를 몸에 각인해 놓으면, 상황과 조건 맞춰 자유롭게 자신만의 복싱을 하다가 때가 되어 자신의 복싱을 스스로 보정할 수 있다. ‘자기보정’ 능력이 없다면, 복싱의 고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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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기보정', 성찰


삶에서도 이 ‘자기보정’ 능력이 중요하다. 삶의 ‘자기보정’을 ‘성찰’이라고 한다. 성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스승을 통한 ‘성찰’과 스스로 하는 ‘성찰’이다. 스승을 통해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면서 성찰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기에 어떤 것도 ‘성찰’하지 않는 이들보다 성숙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스승을 통한 성숙은 스스로 성찰하는 이들의 성숙과는 큰 차이가 있다. 복싱이라는 실전보다 삶이라는 실전은 더 변화무쌍하다. 삶에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온갖 변수가 등장한다. 그때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스승이 가르침을 줄 수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파악하고, 그것을 스스로 보정해 나가려는 이들은 깊이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보정’ 능력은 복싱에서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스승과 배움의 무용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오만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일은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다. 복싱이든 삶이든 마찬가지다. 누군가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면, 제대로 싸우기도 어렵고, 제대로 살아내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가르침이 모두 유용한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다 알게 된다. 어떤 스승은, 어떤 가르침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은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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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과 배움은 항상 ‘자기보정’을 향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르칠 필요가 없게 되는 상태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진정한 스승은 누구인가? 자신이 필요 없게 되는 상태에 이르려 애를 쓰는 사람이다. 복싱을 가르치는 것처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나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철학’을 가르쳐 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철학 그 자체를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변화무쌍한 삶 아래서 항상 틀어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보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복싱에서든, 삶에서든, 가르침과 배움은 항상 ‘자기보정’을 향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법 또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 또 가르쳐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무엇인가를 배우며, 또 가르치며 살아갈 테다.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면,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배울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한다면,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가르칠 것이다.


나는 스승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배우고,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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