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식처, 체육관
중학교 때 다닌 반지하 체육관부터 마흔다섯 지금의 체육관까지. 참 오래도 체육관에 머물렀다. 내게 체육관은 단순히 운동을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지독한 부부싸움에 경찰까지 집으로 온 날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이었고, 어딜가도 비난과 무시만 당하던 내가 유일하게 인정과 칭찬을 받은 공간이었고, 많이도 좋아했던 그녀와 이별 후에도 유일하게 눈물이 나지 않는 공간이었고, 직장에서 힘들어하던 시절 생각만으로도 힘이 되던 공간이었다.
체육관은 내게 그런 공간이었다. 나는 복싱만큼이나 체육관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복싱을 체육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함께 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명 복서들의 시합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때로 복싱 기술에 관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 모든 일들이 너무 좋았다.
긴 시간 체육관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복싱을 좋아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체육관이 나의 마음이 가장 편해지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체육관에서 마음 불편한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긴 시간 체육관에 머물면서 복싱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이 조금씩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체육관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복싱을 너무 오래 했기 때문일까? 체육관 사람들이 내게 복싱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복싱에 대한 애정으로, 체육관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다 보니 체육관에서 나의 위치가 묘해졌다. 어느 사이, 나는 일반 관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지도자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경계적 존재가 되어 있었다.
관장이 있을 때조차 관원들이 내게 복싱을 배우려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관원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복싱에 대한 애정으로 복싱을 나누려던 나의 선의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했다.
체육관에서 지도는 오롯이 관장의 몫이다. 자신이 지도하는 체육관에서 다른 이가 주제넘게 이것저것 지도하려는 일은 관장에게 무례한 일이 될 수 있다. 체육관에 오래 머물렀기에 그 정도의 암묵적인 규칙 정도는 알고 있다. 나의 선의는 그 암묵적인 규칙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나의 선의가 관장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체육관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순간들이 점점 많아졌다.
비단 체육관에서만 그런가? 삶에서도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무례가 될 수 있다. 그 정도 즈음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례를 범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때부터 가급적 관원들에게 복싱에 관련된 조언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시 편한 마음으로 체육관에 머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스타일’은 존재 자체가 가르침이 된다.
“회원님, 진규 형님처럼 하시면 안 돼요.” 관장이 스파링을 하던 어느 관원을 타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관원들에게 지도나 조언은커녕 체육관에 나가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는데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 긴 시간 체육관에 머물면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왜 이제야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 복싱 ‘스타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는 내가 복싱에 통달해서, 관장보다 복싱을 더 잘하게 되었다거나 복싱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그 정도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은 아니다. ‘스타일’이 생겼다는 것은 오래 복싱을 오래 하다 보니, 복싱을 하는 나만의 방식 혹은 체계가 생겼다는 의미일 뿐이다.
‘스타일’은 무엇인가? 특정한 분야에서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체계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한 분야에 애정을 갖고 오래 수련하다 보면 자신만의 체계가 정립된다. 그것을 ‘스타일’이라고 한다. 긴 시간 체육관에 머물면서 ‘복싱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라는 나만의 복싱 ‘스타일’이 생겼다. 이것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
관원들은 왜 내게 복싱에 관해 물었을까? 아마 관장과 다른 ‘스타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테다. “어, 저 사람은 관장님이랑 뭔가 다르게 하네” 이런 마음이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이유였을 테다. ‘스타일’은 힘이 있다. ‘스타일’이 없을 때의 대화는 담소이지만, ‘스타일’이 생긴 이후에 그것은 가르침이 된다. 자신만의 고유한 체계(스타일)를 가진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아직 자신만의 체계(스타일)를 정립하지 못한 이들에게 유효하고 의미 있는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일부 관원들이 내게 영향을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스타일’이 있다면, 언어 없이도 영향을 받게 된다. ‘스타일’은 그 자체가 가르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 이상 지도나 조언을 하지 않는데도, 일부 관원들이 내게 영향을 받았던 이유였을 테다.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내가 없더라도, 나의 복싱 ‘스타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그 ‘스타일’을 따라 해보려고 했던 것일 테다.
하나의 체육관에 두 가지 스타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스타일’은 체육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스타일이 관장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스타일을 배우는 일은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상급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다.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초심자나 중급자가 여러 ‘스타일’에 영향을 받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이다.
왜 그럴까? 복서마다 자신의 복싱 ‘스타일’이 있듯, 체육관마다 지도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체육관에 두 가지 지도 ‘스타일’은 관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심자가 무엇인가를 배울 때는 하나의 체계(스타일) 아래서 배워야 한다. 비단 복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백지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배워갈 때, 두 가지 이상의 체계(스타일)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어떤 가르침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체육관마다 지도 ‘스타일’이 있다. 어떤 복싱 조언이 아무리 유효하고 의미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복싱 ‘스타일’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매일 다니고 있는 체육관의 지도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면, 그 조언과 ‘스타일’은 관원들에게 도움은커녕 방해가 될 수 있다.
오래 머문 곳을 떠나야 할 때
이제 오래 머문 체육관을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오래 머문 곳을 떠나야 할 때는 언제인가? ‘스타일’과 ‘스타일’이 부딪힐 때다. 나는 이 ‘때’를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꽤 좋은 직장을 오랜 시간 다녔다. 그런데 어느 사이 직장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매일 답답했고, 매사 짜증이 났다. 한때 그 모든 문제가 직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부조리한 직장 문화가 내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나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직장이 가시방석이 된 건, 동료들과 불화 때문도, 답답한 기업문화 때문도, 직장의 부조리 때문도 아니었다. ‘스타일’과 ‘스타일’이 부딪혔기 때문일 뿐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모든 직장은 그 직장만의 ‘스타일’이 있다. 나는 긴 시간 그 ‘스타일’에 맞춰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철학이 내게 던진 질문을 부여잡고 긴 시간 고민하며 살았다. 그렇게 철학을 공부하며 지냈던 시간 쌓이면서 나만의 삶의 ‘스타일’이 생겼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삶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과 체계가 생겼다. 직장이 가시방석이 되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미 생겨버린 내 삶의 ‘스타일’이 직장의 ‘스타일’과 매 순간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생긴 우울증의 원인은 직장의 문제 때문도, 나의 문제 때문도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며 시달렸던 우울증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스타일’이 부딪히며 발생한 파열음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알았다. ‘이제 직장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스타일’과 ‘스타일’이 부딪힐 때가 오래 머문 곳을 떠나야 할 때다.
떠남은 동시에 정착이다.
떠남이 항상 방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타일’과 ‘스타일’이 부딪혀서 떠나면 반드시 어딘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게 하게 된다. 떠남은 동시에 정착을 의미한다. ‘스타일’과 ‘스타일’이 부딪혀 발생한 떠남은, 기존에 머물러던 곳이 싫어서가 아니라 원하는 삶이 있어서였으니까.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 없이, 오직 있던 곳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떠난 이들만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스타일’이 정립되기 전에 떠난 이들만이 방황하게 된다.
‘스타일’과 ‘스타일’이 부딪혀 ‘집’을 떠난 이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깃든 ‘집’을 지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10년 전, 직장을 떠나 ‘철학흥신소’라는 인문 공동체를 열었던 이유다. 나는 이 새로운 터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내 삶의 ‘스타일’대로 살아가고 있다.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오래 머문 체육관을 떠날 때가 되었다.
나만의 삶의 ‘스타일’에 생겨 직장을 떠나듯이, 나만의 복싱 ‘스타일’이 생겼으니 이제 체육관을 떠나야 할 때다. 다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할 때다. 나만의 삶의 ‘스타일’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철학흥신소’를 열었듯이, 언젠가 나만의 복싱 ‘스타일’ 깃든 작은 체육관을 만들려고 한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복싱’을, 즐거운 운동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다.
아주 긴 시간, 체육관은 삶의 이런저런 괴로운 순간 속에서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안식처였다. 이제 내 ‘스타일’의 체육관을 열어 누군가에게 그런 안식처를 선물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