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왜 중요한가?
이름은 중요하다. 왜 그런가? 이름은 자신을 표현하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름이 있어야 출석부에서 그 사람을 확인할 수 있고, 책상에 이름표를 붙여 그 책상이 그 사람의 것임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름의 기능이 단지 자신을 표현하는 기호일 뿐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 않은 일들이 있다. 개명을 한다거나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 별칭을 부르는 경우가 그렇다.
개명은 자신을 표현하는 오래된 기호를 바꾸는 일이다. 이는 크고 작은 불편함과 혼란을 야기하는 일 아닌가? 또 친구나 연인끼리 멀쩡한 이름을 두고 ‘두껍아’ 혹은 ‘자기야’라고 별칭을 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표현하는 기호가 달라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거나 혹은 서로의 별칭을 부르는 것일까?
이름의 중요성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층적이다. 한 사람의 이름이 곧 그의 존재를 규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루이 알튀세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있다, 그는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서 ‘호명테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호명테제’는 무엇일까? ‘호명’呼名은 말 그대로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고, ‘테제’라는 ‘주장’이라는 의미다. 즉 ‘호명테제’는 ‘이름을 부르는 것에 관한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호명테제’에 관해서 알튀세르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
알튀세르의 ‘호명테제’
나는 최초의 정식으로서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의 ‘호명테제’는 다음과 같이 함축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호명할 때 주체가 성립된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일까? 개인이나 사회의 감각, 생각, 판단, 행동을 촉발하는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 권위주의 등등이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자본주의·사회주의·국가주의·권위주의적) ‘주체’가 성립된다고 말한다. 알튀세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자.
우리는 아주 흔한 경찰의 일상적인 호명과 같은 유형 속에 그것을 표상할 수 있다. “어이, 거기 당신!” 만일 우리가 상정한 이론적 장면이 길거리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호명된 개체는 뒤돌아볼 것이다. 이 단순한 180˚의 물리적 선회에 의해서 그는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호명이 ‘바로’ 그에게 행해졌으며, ‘호명된 자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루이 알튀세르
“어이, 거기 당신!”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경찰이 우리를 불렀다고 해보자. 이때 우리가 그 경찰을 향해 뒤돌아본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 알튀세르의 주장이다.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경찰에 의해 호명될 때, 우리는 ‘국가 공권력에는 무조건 복종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가진 국가주의적 ‘주체’로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는 ‘주체’가 된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감각·생각·판단·행동할 수 있는 개인일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호명에 답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황진규!’ 집에서 부모의 호명에 대답하게 될 때,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며, 황씨 성을 가졌고,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주체’로 각성하게 된다. 김치를 좋아하고, 황씨 성을 가진 이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주체’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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