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시 예빈이 아버님 되시나요?”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불길한 법이다.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대체로 틀리는 법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의 학교 상담 선생님의 전화였다.
“예빈이가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규칙상 부모님께 전해드려야 할 내용이라서요”
“네. 말씀해 주세요.”
“예빈이가 같은 친구랑 다투고 저를 찾아왔는데, 자꾸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해서요.”
며칠 전부터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고, 자살에 관련된 책도 찾아보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생각났다. 아버지로서 이런저런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며 철학자로서 돌아갔다. 지금은 아버지보다 철학자로서 생각하는 편이 아이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상담 선생님은 함께 아이를 잘 지켜보자는 의례적인 이야기를 끝으로 자신에게 당부할 것이 따로 있느냐고 물으셨다.
“예빈이가 다시 상담받으러 올 때 당부하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네, 아이의 이야기에 너무 많이 공감해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네?”
“아이가 이 일을 너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그저 사춘기 시절 지나가는 일이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상담 선생님은 당황해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공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는 상담사가 아이의 고통에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공감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나의 당부에 선생님이 당혹스러웠던 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느 부모와 너무 다른 반응에 당혹스러워하는 상담 선생님을 위해 한동안 부연 설명을 해야 했다.
공감, 즉 고통을 함께 느껴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이는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처음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겪고 있는 고통의 크기가 얼마인지 잘 모른다. 이때 아이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다. 이는 아이를 키워보면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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