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의 논리

by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마주침이 ‘나’를 형성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그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존재(부모‧연인‧선생‧친구‧영화‧책‧음악‧음식‧운동…)들의 총합이다. 그 마주침의 총합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 마주침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학교를 가게 될지가 정해지고, 그로 인해 어떤 선생, 친구를 만날지 정해진다. 또 그로 인해 어떤 연인을 만날지도 정해지고, 그로 인해 어떤 영화, 책, 음악, 음식을 만날지도 정해진다.


이제 우리는 암울한 전망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마주침이 ‘나’를 형성하고, 그 마주침이 이미 정해졌다면, 우리는 모두 이미 정해진 ‘나’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절망적이고 암울한 전망에 순응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마주침이 ‘나’를 형성하고, 그 마주침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나’는 없다. 이것이 모순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삶의 진실을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 삶의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궤변이나 모순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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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원자 A와 원자 B가 마주쳐 분자 C가 되었다고 해보자. 이때 A와 B는 왜 마주쳤는가? A가 기울어져 빗겨났기(클리나멘) 때문이다. A가 기울어져 빗겨 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정해진 것은 무엇인가? 바로 기울어질 수 있는 각도(편위!)다. 원자 A에게 빗겨날 수 있는 각도는 정해져 있다. 즉, 위에서 아래로 내리던 A가 180°(역류) 각도만큼 기울어질 수는 없다. 아래로 쏟아지던 원자 A가 기울어질 수 있는 각도는 15° 정도일 테다. A가 B와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은 B가 15°의 각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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