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이 ‘나’를 형성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그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존재(부모‧연인‧선생‧친구‧영화‧책‧음악‧음식‧운동…)들의 총합이다. 그 마주침의 총합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 마주침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학교를 가게 될지가 정해지고, 그로 인해 어떤 선생, 친구를 만날지 정해진다. 또 그로 인해 어떤 연인을 만날지도 정해지고, 그로 인해 어떤 영화, 책, 음악, 음식을 만날지도 정해진다.
이제 우리는 암울한 전망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마주침이 ‘나’를 형성하고, 그 마주침이 이미 정해졌다면, 우리는 모두 이미 정해진 ‘나’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절망적이고 암울한 전망에 순응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마주침이 ‘나’를 형성하고, 그 마주침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나’는 없다. 이것이 모순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삶의 진실을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 삶의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궤변이나 모순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마주침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원자 A와 원자 B가 마주쳐 분자 C가 되었다고 해보자. 이때 A와 B는 왜 마주쳤는가? A가 기울어져 빗겨났기(클리나멘) 때문이다. A가 기울어져 빗겨 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정해진 것은 무엇인가? 바로 기울어질 수 있는 각도(편위!)다. 원자 A에게 빗겨날 수 있는 각도는 정해져 있다. 즉, 위에서 아래로 내리던 A가 180°(역류) 각도만큼 기울어질 수는 없다. 아래로 쏟아지던 원자 A가 기울어질 수 있는 각도는 15° 정도일 테다. A가 B와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은 B가 15°의 각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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