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역사 속 아우구스티누스>

서양철학을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눌 때, 고대의 시작이 ‘탈레스’이고, 근대의 시작이 ‘데카르트’라면, 그 사이, 즉 중세의 시작은 ‘아우구스티누스’라고 말할 수 있다. 중세는 신학의 시대로, 모든 삶의 중심이 ‘신’이었던 시기를 의미한다. 이는 르네상스(인간 중심) 시대에 이를 때까지 약 1000년 간이 이어졌다. 그 신학의 시대 시작점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그는 명실공히, 기독교 신학의 최초의 거인이다.


초기 기독교의 많은 교부(종교상의 훌륭한 스승이나 저술가)들이 업적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연 최대의 교부다. 믿음과 영성의 영역인 종교(기독교)가 철학에 견줄 수 있을 만큼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학문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덕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354년~430)는 ‘거인’답게, 그 영향력은 중세를 넘어서 근대 그리고 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데카르트(1596~1650),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라는 걸출한 두 철학자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1000년이 지나 근대가 열린다. 이 근대를 철학자가 데카르트다. 이 근대의 아버지는 아우구스티누스 안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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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살아 있고, 회상하고, 꿰뚫어 보고, 의욕하고, 생각하고, 알며 판단한다는 것 등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가 의심할 때에야 말로, 그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가 의심할 때에는 그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의욕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는 의심할 수가 있을지라도, 자기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의심할 수가 없다.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초월적인 진리(이데아)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철학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이데아’와 같은 (인간의 의식을 통해 파악 불가능한) 초월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인식·추론·판단(의식)을 통해 파악가능한 분명한 사실로부터 철학을 시작하려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으려 했다.


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말로 알려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반복된다. 데카르트 역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통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것을 찾아서, 그것에서부터 철학을 시작하려 했다. 데카르트가 찾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모든 것은 의심할 수 있지만, 지금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르러, ‘인간의 이성(생각)이 곧 인간의 존재’임을 천명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근대를 연 데카르트의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으로부터 맺어진 열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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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근대Modernism 너머 현대 Post-modernism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대가 이성의 시대라면, 현대는 이성 너머의 시대이다. 현대철학을 상징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이 비트겐슈타인이다. 흥미롭게도, 후기 비트겐슈타인 저서인 『철학적 탐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어른들)이 어떤 사물의 이름을 부르고 동시에 그 대상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그것을 보고, 그 사물을 지시하기를 원할 때 사람들이 언급한 소리에 의해 그 사물이 불렸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그들의 몸짓들, 즉 모든 사람들의 자연언어, 즉 영혼이 그 어떤 것인가를 열망하거나 간직하거나 거부하거나 피할 때에 얼굴 표정과 눈짓에 의해, 손발의 움직임과 목소리의 울림에 의해 영혼의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로부터 추측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여러 가지 문장들 속에 정해진 자리들에서 되풀이해서 말해지는 것을 내가 들은 낱말들이 어떤 사물들을 지칭하는지 이해하는 법을 점차 배웠다. 「고백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찍이 지시적 정의를 통해서는 언어를 배울 수 없음을 간파했다. 쉽게 말해, ‘손가락’이란 단어는 ‘☞’를 지시하는 것으로 알 수 없음을 알아챘다.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언어를 배운다고 해보자. 부모가 ‘☞’을 지시했을 때, 아이는 그것이 ‘손가락’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하나’를 의미하는지, 혹은 ‘저리로 가시오’를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지시적 정의(☞)를 통해 언어(손가락)를 배울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이미 그 언어를 알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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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후기 ‘언어게임’으로 표현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이 무엇인가? 그것은“언어와 그 언어가 뒤얽혀 있는 활동들의 전체”를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은 “한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것의 쓰임에 있다”고 말하며 지식적 정의로는 언어는 정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언어는 인간의 이성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집단적 쓰임이 (그 집단에서) 언어의 의미를 정의한다는 것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적 관점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가 비트겐슈타인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유는 신학적 차원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시적 정의의 실패로 단어의 의미는 그 어떤 교사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천상에 근원은 둔, 우리 안에 있는 교사(신)만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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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와 비트겐슈타의 언어에 대한 근본 입장은 같다. 즉, ‘지시적 정의로는 단어의 의미는 지정되지 않는다’는 언어 철학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언어의 의미는 우리 안에 있는 ‘교사’(신) 안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었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라는 것은 ‘신’(중세)도 ‘이성’(근대)도 아닌 생활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어떤 감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 보았다.


‘사랑’이라는 말에서 긍정적 의미를 느끼고 또 그것을 긍정적 맥락에서 사용한다. 또 ‘낭비’라는 말에서 부정적 의미를 느끼고 또 그것을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 사용은 ‘신’이 그렇게 지정해 놓았기 때문도 아니고, ‘이성’적으로 그렇게 배웠기 때문도 아니다. 이는 한 사람이 언어를 쓰는 생활과 그로부터 내면화된 감성 구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분명 여러 한계가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적 체계 확립에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는 그 시작(인용)부터 아우구스티누스적이며, 그 내용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적 언어 이해에 대한 성공적인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낡은 철학은 없다. 재해석이 필요한 철학이 있을 뿐이다. 훌륭한 철학은 언제나 살아 있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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