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역사 속 안셀무스>

안셀무스는 스콜라schola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스콜라’는 ‘스쿨school’의 어원이다. 이는 중세 시대 교회에서 일종의 학교를 만들어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이성적 사유를 통하여 논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스콜라철학은 중세의 학문적인 신학을 의미한다. 안셀무스는 어떤 권위(성서‧성직자)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이성적인 근거를 통해 기독교의 가르침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이런 그의 노력으로 스콜라철학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의 스콜라 철학적인 면은 ‘신神 증명’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안셀무스는 신을 어떻게 증명했을까?


우리는 신이 <그보다 더 큰 것이 아무것도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임을 믿습니다. … 아무리 어리석은 자도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적어도 지성 속에 존재하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는 이것을 들을 때 이해하고, 이해된 것은 무엇이든지 지성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확실히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단지 지성 속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은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보다 더욱 큰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지성 안에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프로슬로기온』 안셀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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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무스는 신을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는 자명하다. 신보다 더 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 아닐 테니까. 신을 믿지 않는 이도 이런 신(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지성(머릿속)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안셀무스의 기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신’과 ‘꽃’이 있다고 해보자. 둘 중 누가 더 큰가? 당연히 ‘신’이다.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니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꽃’은 ‘지성’(머릿속의 꽃)’에도 있고, ‘현실’(들판의 꽃)에도 있다. 하지만 만약 ‘신’이 ‘지성’에만 있고 ‘현실’에는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럼 ‘꽃’이 ‘신’보다 더 큰 것이 된다. ‘꽃’은 2(지성+현실)고 ‘신’은 1(지성)이니까. 이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신’은 지성뿐만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안셀무스의 논증은 간명하다. ‘지성’에 존재한다면 ‘현실’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존재가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황금산은 ‘지성’에는 있지만 ‘현실’에는 없을 수 있다. 그것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신)”은 ‘지성’에 존재한다면 ‘현실’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신)이 ‘현실’에 없다면, 그것은 가장 큰 것이 아닌 것이 되므로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순수하게 이성(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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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하나의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인간이 자유인이 될지, 노예가 될지를 가름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전능한 신이 있다면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만 하는 노예가 될 것이고, 신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안셀무스로부터 약 500년 후에 등장하게 되는 번뜩이는 철학자, 스피노자에게 들어보자. 그는 안셀무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신’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증명을 통해 신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신은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 『에티카』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신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신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세상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그런 ‘신’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안셀무스가 말한 ‘신’, 즉 어떤 것보다 가장 큰 것은 무한無限 아닌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가장 큰 존재, 즉 무한無限이다. 무한은 말 그대로 외부限가 없다無는 말이다. 즉 ‘신’은 세상 그 자체이다. 달리 말해, ‘신’은 내재적 원인이다. 즉, 세상 전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서 세상만물을 만들어내는 그런 존재가 ‘신’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무엇인가? 바로 ‘자연’이다. 정확히는 자연 그 자체다. ‘자연’이 ‘자연’되게, ‘자연’스럽게 하는 어떤 힘. 그것이 바로 신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세상의 외부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계절을 바꾸고, 꽃·눈·바람·파도‧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세상 안에 있는 자연 그 자체가 바로 자연현상(계절변화‧파도‧바람) 혹은 자연물(새‧꽃,‧눈‧인간)들을 만든다. 스피노자의 신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 않는다.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울 뿐, 아무 것도 심판하지 않는다. 또 신(자연)을 따른다는 것은 저마다의 자연스러운 삶을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밖에 있는 초월적인 신 앞에서 우리는 노예가 되지만, 세계 안에 있는 스피노자의 신 앞에서 우리는 자유인이 된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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