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향한 의심, '진실'을 향한 믿음

by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데카르트는 ‘코기토’, 즉 인간의 완전한 ‘이성’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이 완벽하다면, 그 ‘코기토’가 어디서 기원했는가에 대한 답 역시 ‘이성(논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바로 여기서 데카르트는 기묘한 퇴행을 보여준다.


내가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또 의심하는 것보다는 인식하는 것이 더 큰 완전성이므로 내 존재는 아주 완전한 것이 아님을 반성했다. 그런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해서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실제로 더 완전한 어떤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명징적으로 알게 되었다. … 나보다 더 완전한 관념은 … 실제로 나보다 더 완전하고, 나아가 모든 완전성-이것에 대한 어떤 관념을 내가 가질 수 있었던-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어떤 본성에 의해, 단적으로 말해 신에 의해 내 속에 넣어진 것으로 보아야 했다.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더 완전한 어떤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이성(논리)’적으로 자명하다. 논리적으로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때 원인, 즉 인간의 ‘이성’을 있게 한 원인에 대해 데카르트는 “나보다 더 완전한 관념은 … 신에 의해 내 속에 넣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인간의 완전한 ‘이성’은 신에게서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를 ‘본유관념’이라고 한다. ‘본유관념’이란 인간의 완벽한 ‘이성’은 신이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에 본래 인간에게 있다는 관점이다. 이는 ‘이성(인간)’의 시대를 연 데카르트가 다시 ‘믿음(신)’의 시대로 돌아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기묘한 퇴행이지 않은가? 데카르트는 왜 이런 퇴행을 보여주었던 것일까? 이는 단지 한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적 한계를 미봉책으로 막으려고 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조금 더 깊은 함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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