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전승의 과정 역시 야만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 유물론자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러한 전승에 비켜선다. 그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손질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본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요즘 시대의 사랑은 무엇인가?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떠올려 보라. 그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가성비적 사랑’이다. 한 남녀가 만나 사랑을 시작하려 때, 혹은 사랑하고 있을 때조차 이 사랑에서 ‘내가 더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를 묻는다.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 시간과 감정, 돈을 쓰는 게 남는 장사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할 때조차 이 사랑이 ‘투자 대비 효율이 좋은가?’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묻는다. 지금은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의 시간과 감정, 돈과 바꿀만한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 시대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 사랑의 민낯이다. 이런 ‘가성비적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이 그렇듯, 사랑 역시 세상의 변화에 맞춰 변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즘 시대의 사랑은 우리네 삶을 더 기쁘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변화가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변화는 진보이지만, 어떤 변화는 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변화는, 전형적인 퇴보의 역사이다. 어떤 변화가 퇴보의 흐름일 때, 해야 할 일이 있다. 본류classic를 찾는 일이다. 음악이 퇴보의 역사를 걸을 때, ‘클래식’ 음악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의 변화는 퇴보의 역사이기에 사랑의 본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애초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본래적 의미에서 사랑은 ‘공동체적 사랑’이었다. 부처의 ‘자비’, 예수의 ‘아가페’, 공자의 ‘인’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가 곧 사랑이었다. 즉 사랑은, 애초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다. 이런 ‘공동체적 사랑’은 자유주의Liberalism적 흐름 속에서 지나 사적 가치로 변화했다. 즉 공동체적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으로 변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우리’의 사랑이 ‘나’와 ‘너’의 사랑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 사적 사랑의 최초의 형태는 ‘헌신적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성애(부성애)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성애가 바로 이런 ‘헌신적 사랑’의 상징이다. 이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이지만, ‘나’의 안위보다는 ‘너’의 행복을 더 우선시하는 사랑이다. 이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깊이 있는 사랑이다. 이런 ‘헌신’적 사랑은 개인주의적 흐름 속에서 ‘너’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사랑이 등장하게 된다.
이런 사랑은 ‘자기애적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헌신적인 사랑’은 그 깊이를 잃고 얕은 사랑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소위 말하는 쿨한 사랑이다. 좋을 때는 함께 하지만 마음이 떠나면 질척거리지 않고 쿨하게 떠나고 보내주는 것이 사랑의 모범이 되었다. 이제 사랑은 ‘너’보다 ‘나’가 더 중요한 사랑이 되었다. ‘자기애적 사랑’은 ‘너’의 행복보다 ‘나’의 안위가 더 중요한 사랑이다.
이런 ‘자기애적 사랑’이 신자유의Neoliberalism적 흐름 속에서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랑인 ‘가성비적 사랑’으로 퇴보하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랑은 손실을 따져 구매를 결정하는 진열대의 상품이 되어버렸다. 공동체적 사랑’→‘헌신적인 사랑’ →‘자기애적 사랑’→‘가성비적 사랑’ 이것이 사랑의 역사이다. 우리 시대 사랑의 감성을 생각해 보라.
‘공동체적 사랑’은 성경이나 윤리 책에나 있는 ‘유니콘’ 같은 사랑이고, ‘헌신적인 사랑’은 흑백 TV에 나오는 ‘공룡’ 같은 사랑이다. ‘자기애적 사랑’은 쓸데없는 데 시간과 감정이 낭비되는 ‘취미’ 같은 사랑이다. 지금 사랑이라고 수긍되는 사랑은, 가성비를 따져 할 만한 사랑일 뿐이다. 즉, 사랑의 역사는 사랑이 쪼그라드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여야 한다. 사랑을 조금 더 확장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가성비적 사랑’의 시대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통해, ‘자기애적 사랑’으로, 그리고 ‘헌신적 사랑’으로, 끝내는 ‘공동체적 사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점점 사랑이 쪼그라들고 있는 시대에, 진짜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나’와 ‘너’와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할 사랑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