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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사회

1997년의 그 깊은 상처

1997년의 그 깊은 상처


1997년은 IMF 외환위기가 터진 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경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어찌 그리 경기는 일관적으로 나쁘기만 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의 경기는 1997년에 멈추어서 단 한 번도 좋아진 적이 없다. 실제로 좋아진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내 주변사람들에게 ‘이제 좀 먹고 살만하다’는 이야기는 단연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만 듣고 살았다.


 1997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외환위기의 매서운 한파가 우리 집 역시 비켜갈리 없었다. 아버지는 뚜렷한 직장이 없었고, 화물운전, 택시운전까지 이런저런 일을 전전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절하게 느꼈다. 생활고의 스트레스로 인해 어머니의 짜증은 점점 심해졌고, 그것은 잦은 집안의 불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 역시 한 동안 그런 무능력한 아버지를 참 많이도 원망했다. ‘경제적 쪼들림은 우리 바닥에 있는 흉측한 괴물을 불러내는구나’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 얼핏 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괴로웠을 테다. 돈을 벌지 못하는 가장이라는 자괴감, 짜증에 받친 아내의 악다구니, 그리고 자식들의 원망의 눈빛까지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했을 테니까. 당시 내 아버지가 처한 곤경의 절반 이상의 책임은 분명 본인의 탓이 아니었다. 분명 시대적인, 사회구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생계는 가장이 책임져야 해!’라는 한국의 폭력적인 가족주의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서 아버지는 그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혼자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게다.


 당연히 당시 아버지에게 ‘일하지 않을 자유’ 따위는 없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일하지 않을 자유’는 말 그대로 사치라고 느꼈을 테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쉬 좋아지지 않았다. 1997년부터 나와 누나가 돈을 벌기 시작할 때까지 아버지에게 ‘일하지 않을 자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고무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셔야만 했다. 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참 미안하고 또 아픈 일이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게다. 삶의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기억일 게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시대에 변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잠시 일을 멈추고 삶을 돌아볼, ‘일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지금 아버지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역시 내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일하지 않을 자유’는 언제나 사치로 여기며 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내고 있다.


‘일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사회     


일하는 그 과정에서 오롯이 행복감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우리 대부분에게 일은 고난이자 고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고초와 고난을 매일 같이 견뎌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을 것도 없다. ‘일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더 정확히는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얻어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이제 갓 취업한 후배가 자신의 꿈이 은퇴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먹고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렇다. 여느 월급쟁이에게 왜 일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답하니까.


 하지만 사실일까? 정말 우리는 삶을 향유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까? 여행을 아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한참 취업을 준비하던 그에게 ‘왜 취업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가 내게 돌린 답은 ‘돈을 벌어 남미와 유럽을 여행하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흘러 그는 이제 조금 뒤면 직장생활 8년차가 된다. 그는 8년간 직장을 다니며 번 돈으로 남미와 유럽을 다녀왔을까? 다들 짐작했겠지만 남미, 유럽은 고사하고 제주도도 한 번 가보지 못했다. 늘 같은 일상 속에 파묻혀 일만 하고 있다. 돈? 아마 지금 적지 않게 벌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 친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삶을 향유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애초에 목적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들 일을 하는 것,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일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생계 문제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이것은 버는 돈의 액수와 그다지 크게 상관이 없다. 경제적 여건이 나아져도 달라질 건 없다. 물론 이해 못할 것도 없다. 1997년의 깊은 상처는 우리에게 ‘돈 강박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고된 일을 하면서도 삶을 향유하기는커녕 늘 ‘조금 더 벌어야 해, 벌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 놔야 돼!’라는 ‘돈 강박증’ 말이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일하지 않고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누군가 일한 것을 빼앗게 되니까. 하지만 일하지 않고 돈을 벌려는 것만큼 오직 일만 하려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일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행복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모두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정작 삶을 향유할, 그러니까 ‘일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 이것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지금 우리네 밥벌이의 현주소다. 서글픈 일이다. 고초와 고난의 연속인 일만 의무처럼 주어지고, 삶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중 향유의 영역은 없어져버렸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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