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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실체'와 '양태'

'양태'는 '실체'의 변용으로 드러난다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그 자신의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즉,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제 1부, 정의 3)      

 앞의 ‘자기원인’과 마찬가지로 ‘실체’라는 개념도 난해하다. 먼저 스피노자의 ‘실체’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실체’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 사건은 실체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이 때 실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쓰는 실체의 용례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실체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스피노자의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개념의 ‘실체’에 딱 들어맞는 구체적 대상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주위에 있는 대상은 대부분 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황금산은 실체가 아니다. 황금산이라는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황금이라는 개념과 산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황금산처럼 허구적 상상의 산물만이 실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자동차 역시 ‘실체’가 아니다. 자동차라는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교통, 운전, 기계 같은 다른 개념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 주위에 있는 대상은 거의 대부분 실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가 말한 ‘실체’는 무엇일까? 이것 역시 잠시 퀴즈로 남겨두고 다시 「에티카」로 돌아가자.     



양태란, 실체의 변용,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제 1부, 정의 5)     

 양태는 실체가 모습을 바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SF영화에 가끔 액체금속로봇이 나온다. 이 액체금속로봇은 필요에 따라 원하는 모습으로 얼마든지 바꾼다. 무기가 필요하면 팔이 칼로 변하고, 적을 속이기 위해 경찰이나 적의 엄마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이 액체금속 로봇을 실체라고 가정해보자. 그 액체금속로봇은 ‘그 어떤 것’이다. 액체금속로봇은 그 자체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그 어떤 것’은 칼로, 경찰로, 엄마로 변용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양태는 실체의 변용이다. 액체인 그 어떤 것이 ‘실체’라면, 그 실체가 변용된 칼·경찰·엄마는 ‘양태’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주위에 있는 사물들, 자동차·비행기·꽃·나무·새 같은 것들은 스피노자의 ‘실체’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전부 ‘양태’다. 실체라는 그 어떤 것이 변용된 양태. 달리 말해, 실체는 양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실체는 본성에 있어서 그것의 변용에 앞선다.” (제 1정리 1)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스피노자의 이야기는 난해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지금껏 말한 개념들, ‘자기원인’, ‘실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대목에서 스피노자가 왜 「에티카」를 시작하면서 자기원인, 실체와 같은 개념들을 정의했는지 다음 대목에서 눈치 챌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앞서 말한 두 가지 퀴즈, ‘자기원인과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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