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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자기원인'

합리론적 텍스트를 읽는 법

자기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제 1부, 정의 1)      


 읽고 난 뒤 첫 느낌은 단연 ‘뭔 소리야?’ 일 테다. 그러니 먼저 「에티카」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에티카」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2부와 3,4,5부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1, 2부는 합리론적 경향이 강하고, 3,4,5부는 경험론적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3, 4, 5부보다 1, 2부가 더 난해하게 느껴진다. 철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철학 텍스트를 경험론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떤 개념이 구체적인 대상과 일치된다고 느낄 때 ‘이해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까닭이다.

 합리론적 텍스트를 읽을 때는 경험론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때 종종 철학은 두려움과 포기의 대상이 되곤하니까. 땅 위에서의 움직임을 물속에서도 고집할 때 수영은 두려움과 포기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합리론적 텍스트를 읽어 나갈 때는 뭔가 명쾌하게 이해된다는 느낌을 잠시 보류하자. 대신 여유를 갖고 텍스트 자체가 지정하는 개념의 정의와 논리적 추론만을 충실히 따라가자.       



 스피노자는 「에티카」 제 1부, ‘신에 관하여’ 논의를 ‘자기원인’이란 개념으로 시작한다. 이 '자기원인'이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 살펴보자. 본질은 ‘어떤 사물의 고유한 성질’이라고, 존재는 ‘현실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필, 볼펜, 샤프가 있다고 해보자. 연필, 볼펜, 샤프는 ‘존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존재’는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릴 수 있는 성질이 있다. 이 ‘존재’(연필, 볼펜, 샤프)의 고유한 성질이 바로 ‘본질’이다.


 이제 ‘본질’과 ‘존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본질’(쓰거나 그리는 성질)이라는 것은 ‘존재’(연필, 볼펜, 샤프)를 추상함으로써 정립되는 것이다. 이 말은 ‘존재’가 ‘본질’을 포함한다는 의미다. 연필, 볼펜, 샤프(존재) 안에 무엇인가를 쓰고 그리는 성질(본질)이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은 이와 다르다고 말한다. 자기원인은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황당하게도, ‘무엇인가를 쓰고 그리는 성질’(본질) 안에 ‘연필·볼펜·샤프’(존재)가 있다는 의미다.



 본질은 ‘관념’(생각)이고, 존재는 ‘있음’이다. ‘있음’ 안에 ‘관념’이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연필’(있음)이 있기에 ‘쓸 수 있다’는 관념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지만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은 그 반대라고 말하고 있다. 즉, ‘관념’ 안에 ‘있음’이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은 ‘생각’(관념)하는 것 자체로 이미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인 셈이다. 그래서 자기원인인 것이다. 외부원인을 필요치 않고 자기를 원인으로 삼는 자기원인. 그런데 세상에 그런 ‘자기원인’이 존재할까?


  사실 ‘자기원인’이란 말부터 모순이다. 자기원인, 즉 자기를 원인으로 삼는 것이 가능할까? 볼펜, 연필도 재료와 그것을 만드는 사람 같은 외부원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외부원인이 있어야 ‘나’가 가능한 것 아닌가. 결국 자기원인을 설명하는 방법은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즉 (외부원인 없이) 생각하면 존재하게 된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원인은 관념(생각) 자체로 이미 존재 했기에, “존재를 제외하고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이다.

  

 자기원인, 즉 자기가 스스로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궤변이거나 형언모순처럼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황당한 궤변처럼 들리는 이 자기원인을 이미 알고 있다. 퀴즈 하나. 관념 자체로 이미 존재하기에 외부원인을 갖지 않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자기원인은 무엇일까? 정답은 잠시 뒤에 말하기로 하고 다시 「에티카」로 본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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