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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죄는 영민함

스피노자의 '신 해체'

「에티카」의 백미 중 하나는 신을 해체하는 논리적 증명이다. 이 논리적 증명이 스피노자가 종교적 비난과 고초를 받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서 생각하면 스피노자가 신을 해체해 가는 논리적 증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가를 방증하는 셈이기도 하다. 아무 논리도 설득력도 없이 미친 사람처럼 ‘신은 없어!’라고 떠드는 이야기에 종교적 비난과 박해를 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당대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신을 어떤 논리적 증명을 통해 해체했을까? 본격적인 논증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자가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인식이 무신론 혹은 불가지론이라면 그것을 잠시 내려놓자. 당대 사람들, 즉 전지전능한 절대자인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자. 그래야 스피노자의 논증을 더 잘 이해하고 논증 과정의 재미도 더 느낄 수 있다.      


신 또는 각각 영원하고도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제 1부, 정리 11)

이는 영원하고 무한한 실체인 신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이렇게 증명하고 있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무능력이고반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이다그러므로 만일 이미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오로지 유한한 존재일 뿐이라면유한한 존재자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보다도 한층 더 힘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부당하다. (중략따라서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곧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제 1정리 11, 증명


 쉽게 말해, ‘존재함-능력’, ‘존재하지 않음-무능력’인데 우리(유한자)는 존재한다. 그런데 신은 우리보다 능력이 크다. 그러므로 당연히 신은 당연히 존재해야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논리에 따르면 세상에는 이제 두 가지 존재가 있다. 인간, 나무, 새 등과 같은 유한한 존재와 신이라는 무한한 존재. 세상 전체는 이 두 가지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도식화하면 이렇다. 


네모난 테두리가 있지만 이 직사각형으로 무한한 세계 전체라고 생각하자.


명백하게 내려지는 결론은, 첫 째로, 신은 유일하다는 것, 즉 자연에는 단 하나의 실체만 존재하며 그것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이다. (제 1부, 정리 14, 계1)

 이어서 스피노자는 신은 유일하다고 말한다. 뒤이어 자연에는 단 하나의 실체(신)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모순에 봉착한다. ‘신은 무한하다’는 말은 신이 바로 무한한 세계 전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신은 유일하다. 그럼 인간, 나무, 새는? 이런 유한자들은 분명 세상 전체 속에 존재하지 않는가? 유일한 신이 무한하다면, 분명 존재하는 유한자들을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물론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 사람에게 이 의문은 의문이 아니다. 유한자는 전지전능한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간(유한자)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이다. 유한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신의 일부가 분할되어 유한자가 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런 신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보았다. 이 지점에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기획을 서서히 드러낸다.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는 분할되지 않는다. (제 1부, 정리 13)


 스피노자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 즉 신은 분할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증명은 이렇다. 만약 실체가 분할 가능하다면 두 가지 경우가 발생한다. 첫째, 분할 된 두 개 모두 실체가 아닌 것이 되는 경우. 둘째, 분할되어 두 개의 실체가 된 경우. 첫째는 실체가 분할되어 실체가 아닌 것이 되면, “실체는 필연적으로 존재”(제 1부, 정리 11) 해야 하는 데 위배되어 모순이다. 신을 믿는 사람도 이 논리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실체(신)가 분할되어 실체(신)가 아닌 것이 된다면 신이 분할되어 인간을 만들면 신은 신이 아니라는 불온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두 번째 가정, 실체가 분할되어 두 개의 실체가 나온다는 논리만 가능한데, 이 역시 모순된다. “동일한 본성을 가진 둘 또는 다수의 실체는 존재할 수 없기”(제 1부, 정리 5) 때문이다. 이 역시 전통적인 신을 믿는 이들이 반박할 수 없다. 실체(신)가 분할되어 두 개의 실체(신)가 나온다면, 신이 만든 인간도 신이 된다는 불경스러운 이야기가 되는 까닭이다. 이로써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는 분할되지 않는다는 결론은 분명해진다.  



 이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세상 전체에는 분명 수도 없는 유한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유한자들은 신의 피조물이 될 수 없다.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신)는 분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이 논리 앞에 당대 유대교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뿐이다. 신이 유한자가 되거나! 유한자가 신이 되거나! 전자, 신이 인간·나무·새(유한자)를 만들었다는 가정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는 신이 유한자임을 자백하는 셈이 된다. 인간·나무·새 만큼 무한에서 멀어지게 되니까. 어쨌든 인간·나무·새는 신은 아니니까. 하지만 당대 유대교인들은 이런 결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다. 유한자가 신이 되면 방법. 이건 실제로 인간이 신이 된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신이 인간·나무·새 같은 유한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나무·새 같은 존재들 역시 무한한 신의 일부라는 의미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자(신)와 유한자(피조물)의 구분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무한한 세상 전체가 바로 신이 되어 버리면 논리적 모순이 없다. 그 결과 인간·나무·새와 같은 유한자들이 무한한 신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이 역시 당대 유대교인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집요하고 촘촘한 논리적 증명을 통해 당대의 전통적인 신을 해체시켜 버렸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신은 ‘신이 아닌 것’(유한한 존재)이 되고, 신이 '신'(무한한 존재)이 되려면 인간마저 신이 되어버리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논증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 스피노자는 신을 해체시켜버린 것이다. 스피노자가 혹독한 박해와 파문까지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스피노자의 신 해체'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일 테다. 


 스피노자는 유죄다. 아무 의심 없이 맹목적으로 신을 믿는 이들에게, 신을 논리와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이보다 불온하고 불경스러운 존재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 스피노자의 죄는 영민함이다. 스피노자는 너무나 영민했던 죄로, 맹목적으로 믿었던 신의 얼굴이 아닌, 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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