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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왜 신을 없애려 했을까?

스피노자는 신을 너무 사랑했기에 신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스피노자의 신 해체 논증이 강력한 이유는, 전통적인 신의 믿음에서 출발해서 그 신의 허구성(비논리성)을 폭로했다는 데 있다. 신의 믿음 내부로 들어가 신을 해체해버린 셈이다.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반대자들은 (솔직히 말해서) 신의 전능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그들은 신이 무한히 많은 창조 가능한 것들을 인식하지만 결코 그것을 창조할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고, 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한다면, 그들의 판단에 따를 경우 신은 자신의 전능을 다 소진해버려 불완전한 것으로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을 완전한 것으로 확립하기 위해, 그들은 동시에 신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는 것을 모두 이룰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막다른 지경에 몰리게 된다. 나는 이것보다 더 불합리한 것 또는 이것보다 더 신의 전능과 모순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제 1부, 정리 17, 주석)



 알튀세르가 했던 스피노자에 관한 난해한 이야기도 이제 이해가 된다. “스피노자는 신에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였다. 최고의 전략가인 그는 견고한 적의 사령부를 포위하는 데서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마치 자기가 자신의 적인 양 적들 사이에 자리 잡았고, 그들로부터 어떤 의심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점령군 대포를 점령군 자신을 향해 돌려놓는 것처럼 적의 이론적 요새를 완전히 돌려놓는 방식으로 재배치했다.”       

 스피노자는 머리를 조아려 경외를 표해야 할 ‘하나님 아버지’를 논리와 이성으로 갈갈이 조각내 그 퍼즐을 처음부터 다시 맞추려 했다. 그것도 당대 사람들이 가진 신의 믿음 중심부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스피노자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게다. 스피노자는 왜 그랬을까? 스피노자는 신이 싫었던 걸까?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스피노자는 신을 너무 사랑했기에 신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스피노자는 신이 아니라 신을 믿는 사람들이 싫었을 것이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신을, 자기들 마음대로, 심지어 터무니없는(비논리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믿는 세상 사람들.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다 안다는 듯이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싫은 것처럼. 스피노자는 ‘반대자들(신을 오해하는 사람)은 신의 전능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신이 ‘자신의 전능을 다 소진해버리고 불완전한 것’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신(오해된 신)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피노자는 너무나 영민했던 죄로, 세상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었던 신의 얼굴이 아닌, 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오해되고 있는 신의 얼굴을 갈갈이 조각내 퍼즐을 다시 맞추었다. 아니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영민했기에 신의 얼굴 퍼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신을 너무 사랑했기에 신의 얼굴 퍼즐을 다시 맞출 만큼 영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파스칼이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따져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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