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흥신소에서 만난 라캉, 그가 남긴 흔적
“난 나쁜 사람일까.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난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이유도 없이 책상이 미워져 한 대 쥐어박는다.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멋진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갑자기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끈거린다. 격하게 화를 냈다. 라캉은 나를 믿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라캉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이기적이지 않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캉에게 하는 내 말이 왜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까. 나는 몸서리를 친다. 누가 나에게 칼이라도 들이밀었나. 옷이라도 벗겼나. 한 치의 부끄러운 짓을 한 적도 없는데 온몸이 이미 붉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데, 온 세상이 몸 가릴 곳 없이 투명해져서 이제 숨지도 못한다.
난 불면증에 밤을 새우고, 낮에는 과수면에 묻혀 산다. 불면증은 밤을 붙잡아야하는 초조함의 결과였고, 과수면은 낮을 붙잡지 못하는 무력감의 결과였다. 밤과 낮의 양면이 나를 먼 이국의 시차를 따르는 이방인으로 만들었던가. 붕 떠있는 듯한 피로감에 나는 항상 눈이 저릿하다.
‘내가 무엇을 욕망 하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라캉은 거짓말 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화가 나면서도 반문은 못하고 입을 쭈그러트린다. 제기랄. 난 잘난 척하고 싶고, 멋지고 싶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더 깊숙한 오물에 손을 넣어 욕망의 테두리를 만진다. 내 욕망의 요강에 담긴 타자의 욕망이 어떤 모양이기에 이렇게 수치스러운 걸까.
그 교수는 똑똑했다. 그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의 지식은 단순히 지적 우월에 있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에는 힘이 있었다. 모두가 그 말을 존경하게 만들었고 또 무서워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난 느낀다. 사람들은 그 교수를 욕망한다. 사람들의 욕망이 교수 쪽으로 너무 강하게 쏟아져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 같다. 나도.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교수처럼 사람들이 나를 욕망하게 만들고 싶다. 내가 없이는 단 한순간도 못 버티도록 만들고 싶다. 그게 강하다는 거니까. 그렇게 된다면 나를 비웃었던 교복 속의 악마들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며칠 밤을 지새워도 할 수 없었던 고백에 목 매일 필요도 없을 테고, 미친 외로움에 끙끙 앓지 않아도 될 테니까.
나는 교수를 욕망한다. 교수가 받는 그 욕망의 시선을 욕망한다. 그 욕망의 시선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군침이 돋고, 아래에 피가 쏠린다.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읽고, 아는 척 발표도 하고, 미친 듯 그 교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럼에도 그때 내가 느꼈던 건 초조함과 무력감이었다. 내가 오늘 보낸 하루가 후회스러워 칼이 있다면 찌르고 싶다. 그 하루를 버리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 이렇게 보내 버리고 싶지 않아서.
난 아직도 부족한데. 난 아직도 약한데.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서 대낮에 잠이 쏟아졌다. 아무리 자고, 졸고, 눈을 감아도, 쏟아지는 잠을 떨칠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력감을 직면해야 했기에 나는 진심을 다해 졸렸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낮을 후회하며 불면증에 밤을 지새운다. 내 밤과 낮의 시차는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던가. 난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김경환
- 멀쩡히 다니는 대학교 수업 빼먹고 철학흥신소 수업 듣는 대학생
- 철학을 공부하고, 소설을 쓰고 있음 (돈벌기는 이미 글렀음.)
- 창의적인 인간임 (혼자 망상에 빠져 쓸데 없는 생각이 많아서 창의적임)
- 방황하는 청춘인데, 앞으로도 계속 방황할 것 같음.
- 철학을 공부하느라, 겉늙었음. (여자친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