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밖으로 아이 나가니?”
거만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적정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기는 것에서 생기는 기쁨이다. (에티카 제2부 정리 26)
과거의 나는 거만했다. 학창 시절부터 직장 신입사원 시절까지 이어진 성공의 연속 덕분에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내가 성취한 것 이상으로 과하게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겼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꼈으니, 스피노자가 말한 ‘거만’이 맞을 것이다.
그 당시 ‘거만’이라는 감정은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 거듭된 실패와 그로 인한 좌절을 겪으면서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거만’할 수 없게 된 나는 다른 방식으로 기쁨을 얻으려 했다.
인간이 다른 사물에 대하여 적정 이하로 하찮게 여기는 것에서 생기는 기쁨은 무시(과소평가)라고 불린다. -(에티카 제2부 정리 26)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지식이나 사람들을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무시해 버리는 것은 나에게 묘한 기쁨을 준다.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거만’에서 더 이상 기쁨을 느낄 수 없는 내가 그와 비슷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비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에게 있어 철학 공부를 방해하는 가장 큰 감정은 바로 ‘무시’다. 여전히 나의 신체에 남아있는 거만이라는 감정의 흔적이 철학자나 그의 사상을 대할 때면 ‘무시’라는 감정을 불러내어 방해한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적정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기려는 내가 ‘거만’이나 ‘무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정신은 자기 자신 및 자신의 활동능력을 고찰할 때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정신이 자기 자신 및 자신의 활동능력을 보다 명확하게 표상할수록 그만큼 큰 기쁨을 느낀다. (에티가 제3부 정리 53)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능력을 고찰하는 것에서 생기는 기쁨을 ‘자기만족’이라고 정의한다. 그럼 여기서 한번 자기만족을 느끼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해 고찰해보자. 누군가는 자신의 성취에 대해 떠올리며 ‘역시 난 대단한 놈이야’라며 뿌듯해 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역시 난 별 볼일 없는 놈이야’라며 우울해 할 것이다. 전자는 과거의 내 모습이고 후자는 지금의 내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전자의 기쁨은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느낀 자기만족이 아니다. 후자의 슬픔 역시 자신을 제대로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낀 슬픔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기의 신체의 변용 및 그것의 관념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제 2부 정리 19 및 정리 23) 방 안에 홀로 앉아 ‘내 팔과 다리가 여기 있고, 내 심장은 여기 있구나’라거나 ‘나란 존재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하는 것은 스피노자에게 있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강렬한 감동을 느끼는 순간, 그 감동을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나로 인해 행복해 하는 연인을 통해 내가 그 사람의 기쁨의 원인이 되는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가 더 큰 감동을 느끼거나, 누군가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고찰함으로써 자기만족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홀로 가능할거 같았던 ‘자기만족’이라는 기쁨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이외의 다른 존재, 즉 타자와 만남을 통해서만 느낄 수가 있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신체의 변용, 변용을 통한 자기 자신 및 자신의 활동능력에 대한 고찰, 그리고 그로 인한 기쁨이 바로 ‘자기만족’인 것이다.
방에 틀어박혀 자기위로를 일삼는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두려워하는 밖으로 나가 타자를 만나는 것밖에 없다. 그러한 만남이 무조건적으로 기쁨을 준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 나가야 한다. 타자가 득실거리는 밖으로. 스피노자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니, 밖으로 아이 나가니?”
필진 소개
강성찬 (서울역 비트겐슈타인)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본인은 모르고 있음)
- IBM을 그만두고 퇴직금 탈탈 털어 세계일주를 다녀왔음.
- 그래서 요즘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지식근로자가 되었음.
- 저서, '방황해도 괜찮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안 괜찮음)
-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작가.
- 잠재력은 무궁무진한데, 계속 잠재해 있을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