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칼럼] 유목민 조카

스피노자, 들뢰즈, 그리고 조카

요즘 집안의 이런 저런 문제로 두 살짜리 조카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조카의 행동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유심히 관찰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습게도 스피노자와 들뢰즈가 떠오른다. 조카는 집 안에 배치되어 있는 모든 것에 흥미가 있어 보인다. 아직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두 살배기 인데도 불구하고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고 꼭 만져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이렇게 조카는 집안 구석구석을 다 누비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들쑤시고 헤집어 놓고는 자신의 놀이를 기어코 찾아낸다. 그러다 그 기쁨이 끝나면 그 즉시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난다. 안타깝게도 집안에서는 이런 놀이들도 한정적일 테다. 하지만 나의 조카는 이미 기쁨을 위한 재배치를 알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은 계단을 오르는 것에 빠져서 수십 번을 기어서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졌는지 계단 앞에서 찡찡 거리는 것이었다. 달래주려고 다가갔더니 조카는 자신의 손을 잡아 달라는 듯이 두 손을 뻗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래서 손을 잡아 주었더니 놀랍게도 깔깔 웃으면서 계단을 뒤로 오르는 것이다.


오 마이 갓!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더 하더니 이제는 다른 놀이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소리를 지르면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문 밖이었다. 그렇게 찡찡 거리는 걸 달래가며 겨우 옷을 입히고 같이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옷을 두껍게 입고 나온 탓에 조카의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거렸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한보 한보에는 한 치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어쩌다 넘어지면 일어나서 다시 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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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히 고양이를 만났는데 조카는 어디서 본 적이 있는지 “아옹아옹!” 외치면서 고양이에게 질주했다. 그때 조카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 그대로 100점짜리 미소였다. 동물들을 어찌 그렇게 좋아하는지. 고양이를 보고 소리치며 다가간 탓에 결국 고양이는 도망을 갔다. 그러자 조카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또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뒤따라가며 “이 기세라면 곧 지구 밖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조카의 이런 모습이 스피노자가 말했던 인간의 본성, 그리고 들뢰즈가 말했던 유목민적 삶은 아닐까? 우리도 과거엔 직관적으로 기쁨을 위한 놀이를 찾아다녔다. 또 그런 기쁨을 위해서라면 재배치는 물론이고, 낯선 곳에 발을 내딛는 위험할 수 있는 행동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돌아보라.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게 무엇이던가?


무엇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특정한 배치에 사로잡혀 기쁨 없는 삶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었던가. 매일이 똑같기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고, 내일도 기대되지 않는, 매너리즘. 방안에 갇혀 더 이상 놀이를 만들지 못하는 아이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해내야 된다.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들의 본성을. 그리고 나아가자.




필진소개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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