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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빠'는 정말 미쳤을까?

서민은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을 갖고 있을까?

“문빠, 너희들은 환자야. 치료가 필요해”라는 말로 끝맺는 서민 교수의 칼럼이 화제다. 이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목에 이미 드러난다. “문빠가 미쳤다”(http://seomin.khan.kr/366)는 것이다. 서민 교수가 의미하는 ‘문빠’는 어떤 사람일까? 행동양식과 정신상태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행동양식은 문재인 대통령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거나 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무조건적이고 원색적인 비난과 비판을 하는 것이다.    

  

 서민은 문빠의 이런 행동양식에서 정신상태를 추론해낸다. “미쳤다”는 것이다.  (문빠를 비꼬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자.) 이해도 된다. 기자를 폭행한 중국 경호팀이 정당방위라거나, 유력 정치인의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점을 제기할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에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미친' 것 같기도 하다. 이성을 상실해서 미치지 않고서야 이해해볼 도리가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서민 교수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행동양식에서 정신상태를 추론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합리적이지 않은(비이성적인) 행동에서 합리적이지 않은(비이성적인) 정신을 추론하는 것은 때로 비합리적이다. 버스에서 백인 남자가 흑인 남자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갑자기 흑인은 소리를 지르면서 백인을 폭행을 했다. 흑인은 이성이 마비된 미친 사람일까? 백인이 흑인에게 했던 말이 “깜둥아. 여기는 백인 전용 좌석이야. 당장 일어나”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행동양식이라는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 한 개인도, 한 사회도 역사와 맥락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흑인의 폭력은 비이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겠어!’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해는 말자. 흑인과 문빠를 등치시키려는 것은 아니니까. 과거 흑인 받았던 극심한 차별만큼 문빠(혹은 문재인, 혹은 노무현)들이 차별받았는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다. 흑인의 폭력은 정당하다. 흑인은 이미 백인 중심으로 기울어진 인종 차별의 현실을 인식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혹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흑인의 폭력적인 행동은 그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한 나름의 균형 감각이었을 테다. 엄혹했던 일제 치하의 독립 운동가들의 투쟁이 미친놈들의 ‘테러’가 아닌 이성적인 그래서 정당한 ‘독립운동’이었던 것처럼.      


 누군가의 행동은 그 행동 자체만으로 예단할 수 없다. 그 사람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을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문빠는 미쳤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문빠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은 형편없다'고 말할 수는 있다. 문빠는 미친 게 아니다.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언론 등의 역사를 통해 얻은 나름의 현실 감각으로 각자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문빠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 후지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어찌 그들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객관적인 현실을 살지 않는다. 각자의 현실을 감각하며, 그로 인한 각자의 균형 감각으로 삶을 살아낸다. 이쯤해서 나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에 대해서 고백하자. ‘문빠’에게서 어버이 연합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게 내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내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지만, 지금은 그저 입 닥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는 보조국사 지눌의 이야기를 기억하자. 넘어진 곳이 어디인지 알아채는 정확한 현실 감각, 그리고 땅을 짚고 일어나기 위한 절묘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나도 문빠도 각자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 어떠한지 돌아볼 때다. 동시에 문빠가 미쳤다고 말하는 서민 교수 역시 자신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 어떠한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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