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칼럼] 인생은 '진리효과'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삶에 진리는 따위는 없다. 진리효과만 있을 뿐!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된다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진리를 알게 된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영원불변한 진리를 탐구했다. 우리들 각자가 경험하는 불완전한 사랑과 인생이 아니라, 모든 사랑과 인생에 있어 공통적이고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으려 했다. 그들이 발견했다고 ‘말하는’ 본질을 나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것만 같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진리를 알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평가되는 비트겐슈타인(1889~1951)에게 묻는다면 그는 단호하게 답할 것이다. “It's nonsense!" (말도 안 돼!)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사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전통적인 철학자들은 진리란 무엇인가를 탐구해 왔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진리를 탐구하고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언어’에 주목했다. 그는 철학자들이 언어의 논리를 오해한 채, 무의미한 질문에 빠져 있다고 보았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 애쓰는 철학자들을 지성의 병에 걸린 환자라고 비판했고, 그들이 몰두하는 철학적 질문을 질병으로 간주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철학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언어 비판, 즉 언어를 꼼꼼히 살펴봄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철학자들이 어떤 단어 - ‘지식’, ‘존재’, ‘대상’, ‘자아’, ‘명제’, ‘이름’ - 를 사용하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 애쓸 때, 우리들은 언제나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 단어는 자신의 고향인 언어에서 실제로 늘 그렇게 사용되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단어들을 그것들의 형이상학적 사용으로부터 그것들의 일상적인 사용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다.’ [철학적 탐구] 116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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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가진,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사랑의 의미들이 있다. 불완전한 우리들의 사랑의 의미는 틀렸고, 철학자의 본질적인 의미가 옳은 것일까?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본질적인 의미 따위는 없다고 보았다. 우리의 삶과 떨어져 영원불변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본질은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A의 삶 속에 존재하는 사랑의 의미, B와 C, D, E의 삶 속에 각자 존재하는 사랑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불완전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랑의 본질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 존재하는 사건과 사물의 의미대로 살아가면 되는 걸까? 이것이 옳고 그른지, 또는 좋고 나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가령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랑의 의미대로 ‘행동’했을 때, 기쁨을 주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삶에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돈이 행복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행동’했을 때, 그것이 기쁨을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삶 속에서 '진리효과'(진리가 가지는 효과)를 발휘하는 믿음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실질적으로 발휘되는 '진리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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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리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의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진리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진리'는 바꾸어야만 한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사용되는 활동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가 사용되는 삶의 맥락 속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맥락에서 어떤 사람들과 상호작용했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는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랑의 의미를 가진 사람과 사랑을 함으로서 자신이 가진 사랑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


자신과 다른 행복의 의미를 가진 사람과 교감하고 감응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인생의 의미를 가진 사람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믿고 있는 인생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바뀐 의미가 자신의 삶에서 진리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진리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끊임없이 시도할 뿐이다. 만약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 밖으로 눈을 돌려 초월적인 진리의 기준을 찾는다면,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It's nonsense!"





필진 소개
강성찬 (서울역 비트겐슈타인)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본인은 모르고 있음)
- IBM을 그만두고 퇴직금 탈탈 털어 세계일주를 다녀왔음.
- 그래서 요즘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지식근로자가 되었음.
- 저서, '방황해도 괜찮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안 괜찮음)
-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작가.
- 잠재력은 무궁무진한데, 계속 잠재해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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