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칼럼] 자기연민과 이기심의 상관관계

내가 불쌍해서 나부터 살고 싶은가? 나부터 살고 싶어서 내가 불쌍한가?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거나 또는 자신과 유사한 사람의 불행을 보면 슬픔을 느낀다. 스피노자는 이 감정을 ‘연민’이라고 했다. 우리가 '연민'을 느낄 때, 그 대상의 불행을 해결하려 노력하거나 또는 외면해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에 닥친 슬픔은 극복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자기연민'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이니 그 어떤 타인의 불행보다 크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니 외면해 버릴 수도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질수록 나만 특별히 힘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점점 타인의 공간은 사라지고 나의 불행과 고통이 그 자리를 채워나간다.


가끔씩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기연민을 활용한다. ‘야! 나 요즘 힘들다. 이건 네가 좀 내라’라며 친구에게 술값을 떠넘기거나, ‘요즘 일이 많아서 죽을 거 같아. 이번 일은 네가 좀 맡아줘’라며 동료에게 일을 떠넘길 때 사용한다. ‘내가 너보다 더 힘들고 불쌍하다’를 강조하며 나의 이득을 챙길 때 아주 유용하다.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진짜 자기 연민의 속성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리의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의식적으로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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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언제 자기연민을 느낄까? 자신이 감당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닥쳤을 때 자기 연민은 좋은 탈출구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 난 불행한 사건의 피해자일 뿐이야.’ 내 것을 먼저 챙기고 싶을 때 자기 연민은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내가 더 힘든데 누굴 생각해.’ 무의식에서 자기연민은 훌륭한 방어 기제로 작동한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 그 욕망이 커질 때면, 거기서 자기 연민의 싹이 함께 자라난다. 갑자기 내가 남들보다 더 불쌍한 이유가 수십 개는 떠오른다. 내가 더 힘드니 남들 생각은 집어치우고 나만 생각해도 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철학이고 나발이고 돈이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유혹이 찾아온다.


나는 나부터 살고 싶을 때, 내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자. 나는 나부터 잘살고 싶다는 그 이기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연민을 증폭하거나 날조한다. 이기심과 자기연민은 그렇게 공생해나간다. 하지만 그 공생은 파멸적 공생이다. 이기심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 것이고, 자기연민은 나의 내면을 더 황폐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심과 자기연민의 파멸적 공생을 끊지 못한다면, 인생 조때는 건 시간 문제다. 그래서 자기 연민이 느껴진다는 건, 나에겐 일종의 조기경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인생 조땔 수 있다는 경고음인 셈이다. 나에게 자기연민만큼 위험한 싸이렌도 없다.




필진 소개
강성찬 (서울역 비트겐슈타인)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본인은 모르고 있음)
- IBM을 그만두고 퇴직금 탈탈 털어 세계일주를 다녀왔음.
- 그래서 요즘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지식근로자가 되었음.
- 저서, '방황해도 괜찮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안 괜찮음)
-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작가.
- 잠재력은 무궁무진한데, 계속 잠재해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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