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칼럼] 꼭두각시

나는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 있는 네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의 말이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아니라고 잡아 뗐다. 동시에 짜증이 났다. "너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라고 말이다. 그 친구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직감이 발달해서인지 평소 이렇게 뜬금없는 말로 날 찌르곤 했다. 많이 아팠지만 사실 틀린 말을 한적은 없었다. 이 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이 잊혀지지 않고 머릿 속에 맴돌아 깊이 생각해보니 역시나 틀린 말이 아니였다. 나의 삶 자체가 그랬다.


초중고 학생 땐 학교가 좋아서 다닌게 아니라 학생인 내 모습이 좋았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대학생 때 부터는 욕심이 붙었다. 이왕 갈 거 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의 학생이면 좋지 않을까? 하고 싶은 공부따윈 머릿 속에 없었다. 그저 다수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직장도 다르지 않았다. 다수가 원하는 건 연봉으로 바꿔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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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 삶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수가 한다면 나도 따라서 했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수를 따르지 않을 때의 찾아오는 공포심을 감당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 공포심은 마치 나체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습관이 하나 생겼다. 나의 감정은 언제나 뒷전으로 해두는 습관.


그 친구로 인해, '내가 지금 하고있는 사랑도 그 습관의 연장선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 그 친구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처럼 나를 평균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만드는 치장물일 뿐이었다. 그 치장물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버리지도 못했다. 맨 얼굴로는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서.


이것이 내가 이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맨 얼굴의 나를 받아들인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기에. 사랑까지도 치장물로 여기는 치졸한 내 모습을 받아 들일 수 없었기에. 혼자인 나는, '언제쯤 이런 꼭두각시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10년 뒤? 1년 뒤? 내일? 불꺼진 네온사인 간판 같았던 단어들 사이 한가지 단어에 불이 들어왔다. "지금"




필진소개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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