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시대를 엿보다!
1985년 광고 VS 2014년 광고
[1985년]
(자동차 실내외를 곳곳을 비추며)
각종 첨단 자동장치를 갖춘 2000cc의 첨단 세단. 강력한 파워 브레이크, 부드러운 파워 핸들, 자동 정속주행 장치 크루즈 컨트롤, 뒷좌석까지 자동 조절되는 파워시트. 소나타와 함께하는 당신이 바로 VIP입니다.
[2014년]
(공항에서 여자가 나오며)
남 : 고생했어. (여자를 꼭 안아 준다)
여 : 응
남 : 피곤하지?여 : 괜찮아.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며 남자가 운전 한다. 여자는 피곤한지 잠이 들고 남자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당신은 내가 더 강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켜주고 싶어서 말리부.
1985년과 2014년의 두 광고를 비교해보자.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왜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능’을 위해 소비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하는 기능을 위해 진공청소기를 사고, 냉장하는 기능을 위해 냉장고를 산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분명 그랬던 것 같다. 1985년의 광고로 돌아 가보자. 광고는 자동차의 내부, 외부를 비추면서 파워브레이크, 파워핸들, 크루즈 컨트롤, 파워시트 등의 기능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다.
한 시대의 광고는 당대 소비자의 욕구를 가장 충실히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당시 사람들은 분명 자동차의 기능을 소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장 인터넷에서 1985년 그 광고를 찾아보시라. 지금 1985년의 그 광고를 다시 보면 처음 드는 느낌은 단연 ‘촌스럽다’이다. 왜 지금 은 그 광고를 촌스럽게 느끼는 것일까? 떨어지는 화질이나 구식 자동차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광고에서 구구절절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탓도 있다.
이제 기능을 소비하지 않는다.
이제 2014년의 자동차 광고를 들여다보자. 이제는 자동차의 특정한 기능을 보여 주기보다는 자동차가 주는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2014년의 광고에서 상품의 특정한 기능에 대해서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다. 진공청소기 광고에서 청소기의 흡입력이 얼마나 좋은지 전면에 내세우는 일도 없고, 냉장고 광고에서 얼마나 냉장이 잘되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광고도 거의 없다. 이런 광고의 변화는 우리가 이미 기능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기능을 위해 소비하지 않는다. 음식이야기를 해보자. 음식의 기능은 단연 맛과 영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외식을 할 때, 영양가 있고 맛있는 곳으로만 가서 돈을 쓰지는 않는다. 가능하면 아늑한 혹은 이색적인 분위기가 있는 음식점에 가려고 한다. 옷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대에 몸을 보호해주는 기능을 위해 옷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옷의 기능성보다 각자의 기호에 부합하는 멋있고 근사한 옷을 사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 찢어져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청바지를 비싼 가격에 사는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처럼 지금은 더 이상 기능을 위해 소비하는 시대가 아니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은 기능을 위해 소비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허영에 가깝다. ‘나는 겉멋에 빠져 과소비를 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야!’라고 강변하고 싶은 허영 말이다. 이제 배만 부르면 된다고 음식점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계절에 맞는 기능성 옷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사물의 네 가지 속성
기능을 위해 소비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 것일까? 답을 하기 전에 우선 철학자를 한 명 만나보자. ‘쟝 보드리야르’다. 그는 ‘소비의 사회’라는 책 통해 소비에 대해 깊게 사유한 철학자다. 보드리야르는 사물에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가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교환가치’, ‘사용가치’, ‘상징적 교환가치’, ‘기호가치’가 그 네 가지다.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일상의 언어로 쉽게 말해보자.
만년필이라는 사물을 예로 앞서 말한 사물의 네 가지 가치에 대해서 설명해보자. 만년필이란 사물의 ‘교환가치’는 만년필을 팔아서 얼마의 돈을 환산할 수 있느냐는 가치다. 그러니까 ‘교환가치’는 ‘거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하는 개념이다. 만년필의 ‘사용가치’는 말 그대로 글을 적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다. 원하는 내용을 편하고 빨리 기록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용가치’는 ‘유용성의 논리’가 작동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제 만년필의 ‘상징적 교환가치’에 대해서 알아보자. 상징적 교환이라는 개념은 쉽게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년필에는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는 가치도 있다. 이것이 상징적 교환이다. 그러니까 ‘상징적 교환가치’는 ‘증여의 논리’가 작동하는 개념이다. 이제 만년필의 ‘기호가치’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것은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 같은 것을 나타내는 가치를 의미한다. 만년필은 그자체로 부자 혹은 지식인이라는 특정한 신분을 증명하는 가치를 가지도 한다. ‘기호가치’는 ‘신분의 논리’가 작동하는 개념이다.
지금은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보드리야르가 말한 사물에 대한 네 가지 속성이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상품인 휴대폰을 예로 이야기해보자. 휴대폰은 그것을 팔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니 ‘교환가치’가 있다. 또 휴대폰으로 인터넷도 하고 통화도 할 수 있으니 ‘사용가치’도 있는 것이다. 휴대폰을 친구에게 선물할 때 그것은 ‘상징적 교환가치’로 기능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폰’이나 최신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일정 정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기호가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자, 이제 답해보자. 우리는 왜 소비하는 것일까? 교환가치를 위해 소비하는 것일까? 일반 소비자가 스마트 폰을 구입 때 그것을 중고로 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교환가치를 위해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교환가치는 유통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니까 일반적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하는 소비하기도 하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소비 방식이다. 그럼으로 ‘상징적 교환’ 역시 소비하는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소비를 하는 이유는 결국 ‘사용가치’와 ‘기호가치’라는 두 경우로 좁혀진다. ‘기능이 필요해서 하는 소비’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소비’만이 우리 시대에 유효한 소비이다. 이제 다시 처음 말한 광고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앞서 1985년과 2014년의 자동차 광고를 통해 이미 우리는 기능을 위해 소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야 우리가 왜 소비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소비를 하는 이유는 ‘기호가치’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특정한 신분, 계급,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