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먹방을 보는 걸까?
난 티비 보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먹방을 보는 것에 있어서는 프로다. 먹방과 관련된 국내 모든 프로를 섭렵했고, 뻗어나가 일본 프로까지 싹 섭렵하며 동양 챔프를 따냈다. 그리고 이제는 유투브로 세계 무대를 넘본다. 한 번씩만 대결하는 게 아니다. 리벤지 매치도 여러 번 한다. 큭큭, 생각할 수 록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난 대체 왜 먹방을 보는 걸까? 책상에 앉아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랩을 미친놈처럼 따라 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저스디스의 씹새끼라는 곡이였다. 그리고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마르크스와 전태일의 평전. 또, 몇 년째 영화 폴더에서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와 쇼생크 탈출.
먹방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효율이나 가성비를 지나치게 따지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먹고 나서 살이 찌는 부담이 없고, 음식점 까지 먼 길을 가야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돈도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스디스, 마르크스, 전태일, 모토사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체게바라,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의 삶을 엿볼 때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나의 욕구가 어느정도 충족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어쩔 수 없이 따라 붙는 여러 위험요소를 내가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볼 때 먹방과 유사하다. 이렇듯 내가 먹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겁해서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들을 똑같이 따라한다고 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거라 볼 수 있을까? 아마 아닐 테다. 나는 힙합도, 글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흔히들 말하는 스웩이 느껴지는 것들만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리다거나 카피캣이라며 손가락질 한다. 정작 나 자신은 카피캣이 되는 시도 조차 못한 놈이면서. 방에 숨어 삶을 엿보는 인물들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누구도 대체 못하는 자신만의 색깔로 스웩 넘치게.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그들이 자란 뒤에도 어떻게 예술가로 남아 있느냐다." 피카소의 이 말을 믿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예술가로 태어나지만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색깔을 부정하고 결국 잃어버리는 것 같다. 실제로 어린 아이들을 보면 그렇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한다. 천진한 아이들의 그림은 스웩넘치지만, 학원가에 걸린 입시용 그림들에선 좀처럼 그걸 느끼기 어렵다.
나 또한 나의 색을 몰라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고 방황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여지껏 나의 삶은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지 않았기에 나는 이미 남들과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저 아이처럼 진솔하게 느껴지는 게 있으면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
용기 타령도 이제 더 이상 하기 싫다. 다른 사람의 색으로만 사는 것보다 힘든 일은 없었고, 더 이상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지도 않다. 그건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살아도 죽어있는 것과 같으니까. 그래서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하다. 고로 이 글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스웩 넘치는 글이다. 누군가가 잘썼냐 못썼냐를 따지기 전에 말이다.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