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타인'이라는 박자에서 벗어나고 싶 다.
"아... 전 푸코로 할게요." 나에게 닉네임을 물었던 그녀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되물었다. "푸드코트...?" 얼마 전부터 나가게 된 스윙댄스 동호회에서는 닉네임이 필요했고, 난 내 이름을 위와 같이 '푸코'로 지었다. 어렸을 적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지었던 Jack이라는 이름 이후 생긴 세 번째 이름이다. 평소 "왜 이름이란 것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누군가가 정해 버리는 거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푸코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의 이름을 따왔기 때문에.
어릴 적에도 그랬듯 대학시절에도 부적응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내게는 그 필사의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내 영역에 맘대로 침입해 앵무새처럼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했다."오빠, 저번에 내가 말한 스윙댄스 무료특강 올 거지? 오빠, 올 거지? 오빠, 올 거지? 오빠, 올 거지?..." 그렇게 앵무새에게 세뇌되어 스윙댄스를 시작하게 됐다.
스윙댄스는 참 신기했다. 춤을 추는 한 쌍의 남녀를 보면 당연히 사전에 합을 맞춘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윙댄스는 달랐다. 합을 맞춰보지 않아도,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흘러나오는 재즈 박자에 맞춰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에겐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반의 반 박자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여자는 그 신호를 알아챈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박자에 멋들어지게 합을 맞추며 서로를 뽐낸다. 그래선지 스윙댄스에서는 남성을 리더로, 여성을 팔로워라고 한다.
스윙댄스를 즐기는 사람들은 속칭 '출빠'라는 곳을 다닌다. '출빠'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술을 팔지 않는 스윙댄스를 위한 클럽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나에게 '출빠'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좀 더 배우고 가야 될 것 같다"고 피했지만 앵무새에게 통할리가 없었다. "오빠, 갈 거지? 오빠, 갈 거지? 오빠, 갈 거지?..." 그렇게 다시 앵무새에게 세뇌되어 정신차려보니 '출빠'였다.
처음으로 출빠에 들어서고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마치 오래된 서양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구두를 신고 화려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힙합이 뜨기 전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공연을 보러 작은 클럽에 모여든 사람들처럼, 그네들은 진짜 매니아였다. 나도 그곳에 어울려 배웠던 춤을 추면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화려하게 차려 입고 춤을 추는 여성이 아닌 바로 선생님의 스텝이었다. 그의 스텝은 살아있었다. 그것도 혼자서만. 그의 발은 박자를 타는 것으로 모자라 박자를 자신의 스타일로 쪼갰고 심지어 박자를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에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힙합에서는 진짜 고수들이 랩을 하면 늘 이런 찬사가 따라붙는다. "박자를 가지고 논다." 격투기에서도 링 위의 자기 선수가 상대에게 밀리고 있으면 코치는 흥분해서 외친다. "야! 상대방 박자에 끌려다니지 마! 박자를 쪼개라고! 박자를 쪼개! 먼저 주먹을 내밀어!" 어느 분야에서든 박자는 존재하고 진짜 고수는 박자에 억압받지 않는다.
처음 출빠를 경험하고 뒤풀이를 갔다. 술에 취해 큰 목소리로 깔깔거리며 이야기 사이로,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처음엔 스윙댄스가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는 거라 아쉬움이 있었는데, 나중에 실력이 좋아지면 여자가 역리딩이라는 것도 할 수 있대. 그렇게 난 역리딩을 하며 나를 표현하고 싶어."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그녀의 말은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남아있었다.
아픈 머리를 붙잡고 생각해보니 알겠다.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박자가 주어진다는 걸. 돈이라는 녀석이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틀어 놓은 자본주의라는 박자. 타인이라는 놈이 틀어 놓은 듣기 싫어도 지독하게 파고드는 그 박자. 그 박자는 너무 복잡하고 또 자주 바뀌기에 따라가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선지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 박자에 뒤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해버리거나, 심지어 지나치게 우쭐거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진짜 고수는 단순히 박자를 타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늘 그랬듯 박자가 주어지면 그것을 쪼개고, 끌고 다니며, 리드 당하는 것을 넘어 역리딩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흑백 같은 세상에서 화려한 색의 꽃을 피워내고야 만다. 그렇다면 대체 그놈들이 틀어놓은 박자의 세상에서 어떻게 고수가 될 수 있을까?
바로 더 큰 소리의 박자를 찾는 것 아닐까? 어쩌면 그 큰 소리는 0이미 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놈들의 박자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울리는 '가슴 뜀'이라는 박자. 따라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나에게 기쁨을 주는 내가 만든 그 박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약한 나는 또다시 자본과 타인이라는 두 녀석의 박자에 묻히고 말았다. 그 지겨운 반복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직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박자를 탈 때만이 자본과 타인이라는 놈이 맘대로 틀어놓은 박자를 쪼개고, 끌고 가며, 역리딩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나에게 묻고 싶다. "내 가슴은 뛰는가? 아니면 내가 이 박자에 묻히는가?"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다들 그래"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 땐 내가 그놈들 박자에 완전히 묻혀 사라지는 거라고.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