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 관한 몇가지 질문들
쇼핑중독에 관하여
이제 쇼핑중독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오직 기능을 위해 소비한다면 쇼핑중독은 있을 수 없다. 쇼핑중독은 자유롭고 당당해지고 싶어서 돈을 쓰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사달이다. 물건을 고를 때의 자유로움, 돈을 쓸때의 당당함을 계속 유지하고 싶을 때, 쇼핑에 중독된다. 쇼핑중독자에게 ‘그 상품이 필요하냐? 그렇지 않냐?’ 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를 할 때 잠시 느껴지는 자유롭고 당당한 느낌이 좋은 것이다.
쇼핑에 중독된 사람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결국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다. 다만 그 행복해지고 싶은 방법으로 소비를 택한 것일 뿐이다. 쇼핑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늘 뭔가를 사고 싶다. 대부분이 소비에 대한 결핍을 안고 산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소비를 통해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소비를 통해 자유롭지도 않고 당당하지도 못한 지금의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다.
결국 지금의 삶이 극단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쇼핑 중독자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삶이 그나마 견딜 만하게 불행한 사람은 소비에 대한 결핍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쇼핑중독자인 셈이다. 자본주의는 ‘소비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행복에 대한 환상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소비를 부추기지만 그 끝에는 행복이 아니라 파멸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한 사람을 불행으로 이끈다. 이것이 우리시대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이 시대의 ‘된장남’과 ‘된장녀’에게
“행복을 줄 거라고 기대되는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근대사회의 행복의 기본이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다. 우리가 행복을 위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능한 빨리 직면해야 한다.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과소비를 하는 ‘된장남’, ‘된장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사기 위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능한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된장남’ ‘된장녀’가 비난받을 사람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은 결국 행복하기 위해 사는 동물들 아닌가? 그러니 돈을 벌어 소비를 하면서 그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것 아닌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당당하기 위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더 나아가 행복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라는 가치판단은 유보하자. 아니 소비를 통해 끝끝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소비도 나름 괜찮은 삶의 태도 아닌가. 악착같이 돈을 벌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모르는 구두쇠보다 ‘된장남’ ‘된장녀’가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다만, 소비에 관한 몇 가지 질문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비를 통해 얻는 자유로움과 당당함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혹시 우리가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환상인 것은 아닐까? 그것도 우리를 조금씩 파멸로 몰아가는 환상. 우리는 돈을 쓰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소비의 행복’과 ‘노동의 불행’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제 진지하게 자문해볼 때다. 진정한 삶의 행복은 ‘소비의 행복’을 늘리는 것에 있을까? 아니면 ‘노동의 불행’을 줄이는 것에 있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각자만의 답은 있었으면 좋겠다. 위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이 없다면, 우리네 소중한 삶이 소비에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