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제 소비의 이유는 행복이다. 당당해지기 위해서 소비를 하는 사람도 당당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유롭기 위해 소비를 하는 사람도 자유로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소비를 하면서 행복한 느낌이 든다면 소비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아끼고 아끼며 산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하는 잔소리 중 1위가 뭔가?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마라!’다. 하지만 그네들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자식들의 삶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네들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쓰지 않고 모으고 모아서 한 방에 집을 산 것이 아니던가.
사실 부모세대들도 내 집을 마련을 해서 눈치 보는 셋방살이를 벗어나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그들 소비했던 건 근본적으로 집이 아니다. 행복이다. 지금 세대가 ‘쓸데없는’ 유행하는 옷, 화장품을 사는 것과 부모 세대가 집을 사는 것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지금 세대는 악착같이 돈을 보아봤자 예전 부모 세대처럼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의식적, 무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집 사는 것을 아예 포기 해버렸을 뿐이다. 만약 지금 세대에게도 ‘열심히 살면 곧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들 역시 옷, 화장품 대신 내 집 마련에 사활을 걸지도 모르겠다.
부모 세대도, 지금 세대도 다 그렇게 행복해지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만 있다면 모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 뭐 있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분히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돈이든 무엇이든 간에 당장 오늘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나. 집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 사람은 집을 사면되고, 옷을 사서 행복할 것은 사람은 옷을 사면되고, 컴퓨터를 사서 행복할 것은 사람은 컴퓨터를 사면된다. 잘사는 것이 별건가? 각자 형편에 맞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평범한 우리는 소비를 통해서는 근본적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문제다. 아내에게 혼날지도 모르겠지만, 아내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아내는 과소비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실컷 쇼핑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또 크게 비싸지 않은 옷이나 시계 같은 소소한 물건들을 가끔 사기도 한다. 쇼핑할 때, 그렇게 행복하단다. 앞서 말했다시피 아내의 행복감은 분명 소비를 할 때 당당해지는 느낌, 자유로워지는 느낌에서 기원한 것일 테다.
다시 한 번 묻자. 소비하면 정말 당당해질 수 있을까? 있다. 적어도 소비하는 그 순간은 분명 그럴 게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건희의 자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돈을 쓰기 위해서는 그 돈을 또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돈을 버는 곳은 어떤 곳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진상 손님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또라이 같은 사장과 상사의 비위를 끝도 없이 맞추어야 한다. 여기서 서글픈 역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당당하게 소비를 하기 위한 돈을 벌 때 우리는 전혀 당당하지 못하게 된다는 역설.
자유로움 역시 마찬가지다. 신용카드로 소비의 자유를 만끽할 때 느껴지는 그 자유로운 느낌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즐비한 형형색색의 신발과 나를 사로잡는 스타일의 옷을 보면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그 선택의 자유로움은 정말이지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정시에 출근해서 팀장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조차 하지 못하는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5일을 감내해야지 겨우 주말에 몇 시간 자유로울 수 있다.
행복은 시간이다.
행복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크게 공감되는 정의를 만난 적이 없다. 나는 행복은 그냥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는 우리에게 행복을 담보하기 보다는 불행을 담보한다. 재벌의 자녀가 아니라면, 혹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다면, 소비하는 시간보다 그 소비를 위해 돈을 버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평범한 우리는 돈을 많이 쓰면 그 돈을 벌기 위해 불행한 시간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주는 만족감은 분명 행복이다. 하지만 그 소비의 행복을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백화점에서 실컷 카드를 긁고 난 다음 달 우리는 그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또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쏟아지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본주의에 찌들대로 찌든 삶은 짧은 시간 과도하게 소비하고 그 소비한(혹은 소비할) 돈을 벌기 위해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는 삶을 정말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벤츠나 BMW를 사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것으로 당당함이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장려하고 싶다. 하지만 그 비싼 자동차를 사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그 많은 일을 함으로써 여기저기 눈치보고, 매일 야근에 시달려야 한다면 벤츠나 BMW를 사는 것을 말리고 싶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백을 들고 다니면서 당당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몇 십 개월 할부로 사는 것은 정말이지 말리고 싶다. 소비의 행복은 결국 삶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국 시간이니까.
비싼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행복감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감이 더 큰 법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바로 비싼 상품을 소비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소비가 삶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상품의 소비’가 아니라 ‘시간의 소비’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시간.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한다면, 그것은 시간을 마음껏 소비를 하기 위해서여야 할 게다. 시간이 바로 행복이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정확히 그 반대로 살고 있다. ‘상품의 소비’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과도하게 소비하고 있다.
돈? 벌자! '상품'이 아니라 '시간'의 소비를 위해서
돈을 버는 이유가 '상품의 소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더 건강하고 행복한 소비습관을 가지게 될 게다. 예를 들어보자. 바쁜 현대인들은 1년 동안의 빡센 노동의 댓가로 겨우 며칠의 휴가를 받는다. 겨우 며 칠 뿐인 휴가에 1년 동안 노동을 보상받기 위해 돈으로 갖다 바르기 시작한다. 비싼 돈을 들여 간편한 패키지 해외여행 상품을 구입하거나 호텔로 가는 식이다. 물론 그것도 나름 행복이라면 행복일 수 있겠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듯 가는 간편한 패키지 해외여행보다 이런 여행은 어떨까? 적게 일하고 시간을 많이 확보하여 한 달 간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 말이다. 물론 그런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부터 갖가지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적게 일할 용기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내 주위에는 직장을 그만 둘 각오로 직장에 한 달 간의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고, 정말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난 친구도 있다. 걱정 마시라. 그들도 안 굶고 잘살고 있으니까. 심지어 행복하게 산다.
일을 많이 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없을 게다. 반면 적게 일하면 분명 그만큼 돈은 많이 벌지 못하겠지만, 시간은 많을 게다. 물론 ‘여행도 돈이 있어야 갈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값비싼 패키지여행이나 호텔 여행이 아니라 ‘조금 거친 여행을 가면 된다!’고 마음먹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거친 배낭여행이 피곤하거나 힘들 거라고 미리 겁먹지 말자. 우리를 정말 피곤하게 하는 것은 거친 배낭여행이 아니라 매일 같이 쏟아지는 업무를 해야 하는 그 놈의 직장이니까.
절대 잊지 말자. ‘행복=시간’이라는 사실을. 시간을 팔아서 노동을 해야 하는 우리는 결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소비로 행복을 추구하려 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 이는 곧 우리가 더 행복으로부터 더욱 멀어짐을 의미한다. 3일의 호텔 여행보다 30일 동안 노숙하는 배낭여행이 분명 더 행복한 여행이다. 왜냐고? 행복은 곧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