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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더 많이 소비하면, 더 행복해질까?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


“돈 없이 행복할 수 있어!?” 돈에 과도하게 경도되고 위축된 사람들이 공격하듯 하는 질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돈의 액수와 행복이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로부터 앞의 공격성 질문을 받곤 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일견 옳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다수가 모여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돈의 액수와 행복이 그다지 상관없다는 내 생각이 어쩌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 아닐까? 어느 쪽이든 너무 성급하게 답을 내리기 전에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고민해보자.


 일본의 사회학자 ‘야마다 마시히로’와 ‘소데카와 요시유키’가 지은「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라는 책에 흥미로운 도표가 하나가 등장한다. 그것은 1인당 GDP(국내 총생산)와 주관적 행복의 상관관계를 수치화한 도표다. 이 도표는 ‘텐츠 종합연구소’라는 곳에서 1995~2007년에 걸쳐 97개 나라 및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되었다. 이 도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97개 나라에 다양한 국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일본·독일 등은 물론이고 스위스·덴마크·핀란드·스웨덴 같은 소위 말하는 복지국가부터 경제 여건이 좋지 못한 브라질·인도·짐바브웨까지 이 도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GDP에 관해서 잠시 설명해보자. GDP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총생산량이다. 그러므로 1인당 GDP는 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총생산량이 된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1인당 GDP는 ‘국민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앞서 말한 도표의 핵심을「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의 내용을 빌려 간단하게 말해보자. 

 “1만 달러까지는 GDP가 증가할수록 행복지수도 커지는 비례관계가 나타나지만, 1만 달러를 돌파하면 그 관계가 불규칙해지다가 마침내 그 연관성이 사라진다. 이것은 곧 1인당 GDP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민의 행복지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이 사실을 우리에게 한 번 적용해보자. 1만 달러면 한화로 약 천만 원 정도가 된다. 4인 가족 기준이라면 4천만 정도가 된다. 그러니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에 4천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더라도 '돈-행복'의 관계가 불규칙해지다가 결국은 그 상관관계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이것이「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에 등장하는 도표의 핵심이다. 아마 ‘4천만 원’이란 금액에 꽂혀 있을 것이다. ‘4천만 원? 턱도 없지’ 혹은 ‘4천만 원? 그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4천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에서 잠시 눈을 떼자. 여기서 '돈-행복'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읽어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비와 행복의 두 가지 진실


우선은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실제로 그 도표를 보더라도 이라크나 짐바브웨처럼 1인당 GDP가 현저히 낮은 국가에서는 행복감 또한 아주 낮다.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이라크나 짐바브웨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4인 가족이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헛소리다. 절대적 궁핍함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행복은 마음가짐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다. 절대적 가난은 행복은 고사하고 생존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 최저 생계비라는 측면에서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돈은 일정 정도의 액수를 넘어서면 결코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건조한 도표를 보며 ‘1만 달러 이상이면 행복감은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 대신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치과 의사를 한 명 알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서 자랐다. 그래서 대학시절부터 늘 과외를 하면서 자신의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다르다. 그럴듯한 치과를 개원하고 50평 대 넓은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그런데 나는 그가 예전 학생 시절 과외를 하며 살 때 보다 지금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시절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평소 갖고 싶었던 청바지를 사고, 맛있는 것을 사먹을 때는 그는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그 소소한 것들 앞에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한 지금 그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가서 사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또 가끔 실제로 그렇게 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예전의 행복한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 소비할 때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저 돈을 쓰고 물건을 집으로 가지고 올 뿐, 예전 청바지를 사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느꼈던 그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해하던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더 많이 소비하면, 더 행복해질까?


그를 보며 돈의 액수가, 소비 능력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돈에 쪼들리며 사는 우리로서 그 치과의사에게 쉬이 감정이입할 수 없겠지만, 소비 능력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삶의 진실만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1인당 GDP가 일정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1인당 GDP와 행복지수 사이에 거의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정도의 소비 능력이 있으면 돈은 더 이상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바우만의 주장은 옳다. 우리네 몸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란 것은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상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급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과 한강 고수부지에서 수영하는 것,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과 근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벤틀리를 타는 것과 소나타를 타는 것에서 우리 몸이 느끼는 만족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그게 차이가 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의 몸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탓이 더 클게다.


 아니 오히려 과도한 소비능력은 불행을 담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유하지 않았지만 화목했던 가정에 뜻하지 않게 많은 돈이 생기게 되었을 때 더 행복해졌을까? 행복해지는 경우가 예외적이고, 불화에 휩싸이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없이 살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부부나 연인이 어느 날 많은 돈이 생겼을 때 각자 서로의 탐욕을 쫓아 불행한 이별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언제나 돈에 대한 결핍감을 안고 사는 우리는 더 큰 부유함이 더 큰 행복을 담보할 거라 확신하지만 실제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과도한 부유함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더욱 일반적이다.

        

 소비와 행복에 대한 상관관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적 생계비조차 만족할 수 없을 정도의 낮은 경제적 능력은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소비 수준을 갖춘 후라면 경제적 능력은 더 이상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전자만큼 후자 역시 분명한 삶의 진실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소비를 하면 지금 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란 생각은 무지하고 허황된 믿음이다. 그러니 더 많이 소비하면 더 행복해질 것이란 믿음 역시 허황된 것이다. 그것은 소비에 대한 과도한 결핍감이 만들어 낸 거짓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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