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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normal)으로 떠난 여행

나는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요즘 종종 어울리는 모임이 있다. 넷이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기에 넷의 삶은 다르다. 그 중에서 나의 삶이 가장 다르다. 한 명은 중견 기업 오너, 또 한 명은 몇 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 나머지는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나는 뭔가?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셋은 아마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게다. 그래서였을까? 모임 중에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다’는 말에 가장 나이 많은 형이 물었다.   

  

“뭔 수업 하냐?”     


 순간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은 일종의 막막함이었다. ‘너무 다른 삶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라는 막막함. 그네들은 ‘정상’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버는, 정상 중에서도 ‘정상’ 하지만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비정상’이 존재한다. 공황장애로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 편의점 알바로 하루를 버티며 사는 사람. 전세금을 빼서 세계일주를 떠난 사람. 소설가를 꿈꾸며 골방에 갇혀 버린 사람. 자살 할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 자해를 할 때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     


 세상의 기준으로 명백히,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삶이다. 이들이 내가 몇 년간 만난 사람들이다. 그렇다. 나 역시 ‘비정상’이다. 직장을 때려 치고 집필실 틀어 박혀 책을 읽고 글 쓰는 삶만큼 ‘비정상’으로 확실히 공증받는 삶도 드물다. 그래서 나는 ‘정상’인의 모임이 적잖이 불편했다. ‘정상’과 ‘비정상’의 만남은 언제나 크고 작은 마찰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모임이 괜찮다. 아니 때로 즐겁다.      


 ‘정상’과 ‘비정상’은 없다. 다수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평균의 삶’과 그 ‘평균 밖의 삶’이 있을 뿐이다. 그네들은 평균적이고 나는 평균 밖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평균이든 비평균이든 다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저마다 서사와 그 속의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 나는 ‘비정상’인의 모임에서만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불편하게 짝이었었던 ‘정상’인의 모임에서 ‘사람’을 만났다. 참 좋은 '사람'들.


 나는 이제 불편한 ‘정상’인의 모임이 왜 즐거운지 알겠다. 그건 일종의 여행이다. ‘비정상’인 내가 ‘정상’인의 삶으로 잠시 떠나는 여행. 모든 여행이 그렇듯 여행의 즐거움은 불편함에서 오지 않던가. 그 모임은 불편했기에 즐겁다. 그 여행에서 '사람'을 만났기에 더 즐겁다. 언젠가 장자는 ‘지혜로운 자는 땅에서는 걷고 물에서는 헤엄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땅을 걷는 자에게 물속은 여행이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자에게 땅은 여행이다. 


 나는 땅에서는 걷고, 물에서는 헤엄을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낯선 곳을 자유자재로 횡단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다. ‘비정상’적인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가. ‘정상’적인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가. 사람에게 사람만큼 큰 위로와 가르침을 주는 존재는 없으니까. '비정상'인 나는 '정상'인 형님들이 부를 때 언제든지 흔쾌히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참, 형님들, 저 철학 수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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