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답할 수 없었던 질문.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수없이 되 뇌였지만 단 한마디도 답할 수 없었던 질문.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불행했다. 여전히 매순간 불행하다. 나는 그때 정말 행복해지고 싶어서 이혼을 선택했던 것일까? 행복은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불행한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엉켜버린 관계, 환경, 상황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랑스런 아이마저 포기할 만큼 지치고 힘들었다.
앞으로의 계획 따위는 내게 없었다.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지는 상황들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더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금만 아니라면, 힘들어도 곧 다시 모든 것이 새로워 질것만 같았나보다. 매번 그랬다. 내 삶의 방식이. 그렇게나 무책임했다.
나는 두려웠다. 나의 그 삶의 방식이 아빠라는 사람의 삶의 방식과 너무나 닮아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견뎌왔던 긴 세월의 결혼생활은 결국 아빠의 삶을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었다. ‘이것만 지나가면, 이 일만 지나가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빠. 그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노래에 취해 살았다. 그 삶의 방식은 곧 자책감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그 악순환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터져 나온 피비린내 나는 감정들은 오롯이 엄마와 자녀들에게 퍼부었다. 내 아빠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부모가 절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아빠가 술에 취할 때면 매일같이 두들겨 맞는 엄마도 너무 미웠다. 중학생 즈음, 엄마에게 우리를 데리고 도망가 달라고. 그것도 아니면 엄마혼자라도 도망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불행한 가정 속에서 살았다. 차라리 가정이 깨지면 다 부셔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과거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사랑스런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 때, 이혼을 하기 전 엄마로서의 내 모습만을 자꾸 떠올렸기에 답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육아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육아론에 기초한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을 토대로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를 질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라는 숙제에 난 현재를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기에.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여전히 답하지 못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질문 자체를 긴 시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피해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직한 답이겠다. 나에게 그 질문은 너무나 아픈 질문이었으니까. 지금 나의 바람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사랑스런 아이를 생각하며, 아프지 않게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그게 나의 바람이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서 시작해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로 끝이 나는 질문이다. 나는 주어진 질문의 시작도 끝도 모두 우회하려 했기에 오랜 시간 답답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긴 시간의 공부가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어찌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그 방법이 희미하게 나마 보인다.
매 순간 나를 좌절하게 하는 내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긍정하고, 그 긍정의 순간들을 모아 성숙하고, 그 성숙으로 인해 정직하게 내 모습을 내보이며, 내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그때 내 삶은 행복한 삶이 되어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해 나가고 싶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널 너무 사랑해. 꼭 좋은 엄마가 될 게”
구달 (good-all)
- 아직 겁이 많아 필명을 씀.
- (사진 속 인물 아님) 동양인임.
-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