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방해하는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노래 부를 것.
꿈을 이루려는 사람은, 꿈을 가로 막는 목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지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꿈꾸는 자에게 부여된 최초의 임무다. s. spinoza
낯 간지럽다. 아니 조금 창피하다. 노래를 잘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다.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할만큼 노래를 잘해?"라고 묻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 그럼 한번 들어보시라. 어떻게 해야 노래를 잘 하게 되는지.
중고등학교 때 나는 밴드 활동을 했었다. 보컬이 내 포지션이었다. 원래는 기타를 쳤었다. 근데 밀렸다. 실력이 없어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 방과 후 활동으로 통기타반이 생겼다. 기타에 관심이 있던 혹은 배워보고 싶던 학생들이 신청했고, 약 15~20명 정도가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멋지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기대하며 신청했을 텐데 웬걸. 기타라는 악기는 만만치 않았다. 일단 치다 보면 손이 너무 아팠다. 코드를 잡는 왼손은 굳은살이며 물집이 잡히기도 했고, 기타 줄을 잡기 위해 꺾은 손목이 너무 아팠다. 기타를 배우려면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인데, 그 통증 앞에서 태반이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그 통증을 이겨냈다. 외삼촌들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며 자라서, 그들처럼 기타를 멋들어지게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마음이 컸나보다. 나와 함께 5~6명이 기타를 계속해서 치게 되었다. 그런데 남아있는 이들 중 나의 기타 실력 향상이 가장 늦었다.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기타 실력은 점점 뒤처졌고, 결국 나는 보컬로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오래하지 못했다.
왜 내 실력이 유독 뒤쳐졌는지를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실력 향상이 주춤했을 때쯤, 나는 고민했다. 이제 중3인데 좋은 고등학교 가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나. 기타 연습하느라 이렇게 시간을 많이 써도 되나. 밴드 활동도 이제 슬슬 접어야 하지 않나. 고민하던 나를 밴드 멤버들이 독려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같이 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밴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공부가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하던 녀석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떤 친구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어떤 친구는 잘 못해서 안 좋은 대학 갔다. 그건 기타나 밴드 활동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타 실력, 음악 실력은 엄청나게 늘었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걔네들이 하는 밴드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이젠 거의 넘사벽 수준이었다. 흥겨운 록음악이 흐르던 공연장 관객석에서 나는 혼자 슬픈 느낌과 함께 고민에 빠졌다.
‘쟤네들과 왜 이렇게 실력이 벌어져 버렸지. 왜 난 저렇게 실력이 늘지 못했지..’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셨다. 기타는, 밴드 활동은 대학 가서 실컷 하라고 하셨었다. 나는 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학교도, 사회도 그런 사람을 대우하는 것 같았다. 음악을 취미 이상으로 삼는 사람 치고 내 주변에서 대접받으며 사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결국 부모의 기대, 사회적 분위기 등이 내 안에 무의식처럼 작용하여 더 이상 음악에 흥미를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뚫고나갈 용기가 없었다. 반면에 음악을 계속했던 그 친구들은 음악이 재미있어서 공부에 대한 압박도 잊었다. 그게 나와 그들의 차이점이었다. 이제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을 알 것 같다. 계속 노래를 하면 된다. 노래 부르는 것이 즐거우면, 계속하면 실력은 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쉽던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목소리들을 압도해내지 못해서 노래라는, 가수라는 꿈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게다. 노래를 잘하는 진짜 비법을 알겠다.
노래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목소리보다 더 크게 노래를 부르는 것!
그러면 이긴다. 이것이 음악을 포기했던, 그리고 다시 집어 든 내가 생각하는 '노래 잘 부르는 법'이다. 너무 허무하다고? 디테일한 강의는 보컬 선생에게 직접 배우시길. 나도 그럴 생각이니까. 하지만 방해하는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훌륭한 보컬 선생에게 배운다 해도 결코 노래를 잘할 수 없다.
가수가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목소리는 나에게 외친다. ‘너의 실력은 형편없다. 음악으로 밥벌이하기엔 힘들다, 그리고 늦었다. 취미로 해라.’ 이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부를 이번의 나의 노래는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
“남들이 뭐래도 니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 마. 힘이 들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 <해에게서 소년에게> 중
덧.
한 번의 기회가 또 있었다. 모 음악오디션 프로그램 1차 예선에 통과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취준생이었고,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 오디션 2차 예선일정이 발표되던 날, 나는 고민에 빠졌다. 토익스터디 모임 날짜와 2차 예선 날짜가 겹쳤던 것. 스터디 모임 하루정도 빠지는 게 뭐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하루 공부가 아쉬운 나에겐 큰 갈등이었다. 결국 나를 스터디 모임으로 끌고간 것은 작은 속삭임 한마디였다. "어차피 가수 될 것도 아닌데 뭘..." 2차 예선에 참가했다고 합격이 보장된 건 아니다. 하지만 또 아나. 그 선택이 좀 더 빨리 나를 가수의 길로 인도했을지. 그러니, 하고 싶으면, 그냥 하자.
김종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인 이유는 브런치 작가 신청 2번 낙방해서임.)
- 순종적인 직장인이었음. (철학흥신소 오기 전까지)
- 요즘 직장에서 막나가고 있음(요단강 건넜음.)
- 흥신소 생체실험 대상. (소심한 인간이 탈脫소심해질 수 있는지 실험 중)
- 노래하고 글쓰는 것을 좋아함. (자기말로 노래 잘 한다고 함. 들어 본 적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