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 수업 후기
"나는 비벼대는 것들이 싫어. 고양이는 사람에게 몸을 비벼대며 시간을 보내지. 나는 그게 싫다네." 질 들뢰즈
나는 강아지를 기른다. 이름은 호두다. 호두는 참으로 '비벼대는' 존재다.
들뢰즈가 "나는 비벼대는 것들이 싫어"라고 했을 때 빵 터졌다. 나와 호두는 서로 비벼대는 관계다.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호두에게 비벼대는 비중이 더 크다. 호두가 나에게 비비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완동물(이제 '반려'동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동물의 욕망을 거세한 사람이다. 그 증거는 너무 명백하다. 뒷산에 산책을 가서 줄을 잠시 풀어주면, 호두는 미사일처럼 슝하고 튀어나간다. 강아지가 일으키는 대부분의 문제행동은 산책을 자주 해주기만 하면 모조리 해결된다. 그 말은 강아지는 본래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야생성이 좀더 남아있기 때문에, 현관문이나 창문이 조금이라도 열려있으면 탈출을 시도한다고 한다. 새도, 햄스터도,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자유를 주었을 때 우리 안에 남는 동물은 거의 없다.
자유를 주었을 때 우리에 남는 동물이 있다면, 그건 강아지일 것이다. 강아지는 동물 중 가장 '길들여진' 존재다. 호두는 야생에서 살아갈 능력을 상실했다. 사냥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호두는 신체와 유전자마저 인간에게 비벼대도록 조작된 존재다. 호두와 같은 푸들종은 털갈이를 하지 못 한다. 호두의 털은 인간의 머리카락처럼 계속 자라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미용을 해주어야 한다. '미용'을 해야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호두는 동물성을 상실한 게 분명하다. 호두가 설령 사냥에 성공한다고 쳐도 몇개월만 지나면 털이 눈을 덮고 덤불에 엉켜서 움직이지 못할 테니 말이다. 호두는 인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호두를 '비벼대는' 존재로 만든 건 인간이다.
강아지의 역사는 너무나도 불행하다. 호두가 털갈이를 못하게 된건, 인간이 강아지가 털 빠지는 것을 싫어해서다. 호두는 털이 잘 안빠지는 종끼리 무한 교배를 시킨 결과이고, 말티즈는 앙증맞고 하얀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몸집이 왜소한 강아지끼리 무한 교배를 시킨 결과다. 퍼그는 단순히 강아지의 코가 납작하면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에 만들어진 종인데, 퍼그는 그 납작한 코 때문에 평생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산다(그래서인지 퍼그는 수명이 짧다). 강아지 중에서도 진돗개, 스피츠처럼 털갈이를 하는 종들이 상대적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강아지가 '비벼대는 존재'가 된 건, 인간이 강아지에게 비벼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강아지를 길들인 것도 모자라 좀더 쾌적하게 비비기 위해서 강아지의 유전자마저 조작해왔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사람들은 강아지가 얼굴을 핥으면 감동한다. 하지만 강아지가 사람의 얼굴을 핥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개체가 사냥해온 먹이를 확인하기 위해 입술을 핥던 늑대의 습성 때문이다. 내가 울 때 호두가 가끔 눈물을 핥아준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호두ㅠㅠ"하며 감동했지만 사실 호두는 그냥 눈물이 짭짤해서 핥은 거다(그 증거로 호두는 내가 콧물을 흘릴때도 핥는다).
어떤 유튜브에 갑자기 집에 괴한이 들이닥쳐 주인을 패는 시늉을 했을 때 강아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실험한 영상이 있다. 그 실험에 나온 개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백프로, 괴한한테 얻어터지고 있는 주인을 두고 도망갔다! 그 영상에 '뭔가 환상이 깨진 기분이다'라는 댓글이 줄줄 달렸던 게 기억난다. 강아지와 좀만 생활해보면, 주인을 살리기 위해 몸에 물을 묻혀 불을 껐다는 '오수의 개'와 같은 이야기는 다 구라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있다. 강아지가 인간의 친구라는 믿음은 단지 인간이 강아지에게 '비벼대고' 싶어서 만들어낸 판타지다.
인간의 '비벼대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강아지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동물과 자연이 파괴되었는가. 오늘 집에 가서 호두를 풀어줄 수는 없지만, 이제 인정은 해야할 것 같다. 호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도 호두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나약해서 서로 '비벼대는' 관계일 뿐이다.
- 철학흥신소 수석 요원.
- 졸라 좋은 대학 나왔음. (지금 생각하는 거기보다 더 좋은 데임. 트럼프와 동문, 이방카와 동기. 영어는 생각보다 못함.)
- 종교 : 자본주의교. (개종 거의 다왔음. 오, 주여!)
- 당근 졸라, 금수저임.
- 금수저라는 말 듣기 싫어, 맨땅에 헤딩하듯 사업했음 (당근, 졸라 망함)
- 졸라 망하고, 졸라 우울증 왔음
- 지금 철들고 있는 중 (자기가 졸라 대단한 사람인줄 았았는데, 졸라 망하고 정신차리고 있음)
- 요즘 글쓰는데 재미 붙여서 졸라 쓰고 있음.
- 철학흥신소 생체실험 대상 (한 사람이 얼마나 단기간에 변할수 있는지 증명 중)
- 뭐가 되도 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