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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칼럼]난교(蘭交)

익숙해져버린 사람과 하는 것이 지겨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임에 관한 글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나와 있었고, 참석 조건은 단지 "너도 그것을 욕망하는가?"였다. 나는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곳에 가보니 한 사람 뿐이었다. 실망하던 찰나였는데 다행히도 하나 둘씩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전에 몇 번 참석을 했었는지 서로 아는 사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이가 대다수인 듯 했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훑어보며 호기심을 키웠다. "이 사람은 어떨까?, 저 사람은 어떨까?"

모임 시작시간이 되자 자연스럽게 끌리는 사람들끼리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게 끌렸는지 어떤 한 사람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모두가 당연한 듯이 엉겨 붙기 시작했다. 어떠한 말도 필요 없었고, 들리는 소리라곤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평소보다 힘이 든다는 걸 느꼈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근육이 사용되어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전신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7분이라는 시간이 이상적인 시간이라 판단되었는지, 정확히 7분이 지나자 모두가 파트너를 바꾸기 시작했다. 물론 내 파트너도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또 다시 엉겨 붙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 번쯤 반복되었을 때였던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니 괜찮아졌다. 그러한 페이스에 몸이 적응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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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 모임은 끝이 났다. 땀이 많이 난 탓에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곤 함게한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가까워진 느낌. 어떤 대화도 없이 몸만을 맞댄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워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참석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전신의 근육통. 기분 나쁘지 않은 통증을 짊어지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말이라는 게 그다지 필요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어쩌면 관계에서 나던 향기가 사라질 때쯤부터 말이 끼어드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과거 “나 사랑해?”라는 질문에 구구절절 대답을 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말을 해도 불만족스러웠던 그 기억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는 관계의 향기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렇게 나타난 빈 공간에 말이라는 게 비집고 들어왔나 보다. 향기를 대신해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나 보다.


슬픈 일이다. 향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난교(蘭交): 난의 향기와 같이 아름다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친밀한 사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상 주짓수 오픈매트 후기였습니다.



이종혁
- 철학흥신소 수석 요원.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하고, 스쿠버다이빙, 글쓰고, 철학 공부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방황하다가 이제 뭐 좀 할 것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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