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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꺾인 복서에게

기수야, 너는 '지지' 않았다.

  

기수야, 고개 숙이지 마라. 당당하게 오늘 또 하루를 살아거가라. 너는 어제 ‘지지’ 않았다. 네 꽃은 아직 피지도 않았으니까.           


좋아하는 동생이 있다. 그의 꿈은 여느 20대 아이들과 다르다. 그의 꿈은 복서다. 복싱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의 꿈이다. 그가 한국 챔피언이 되었을 때 그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하지만 세계로 나아가려는 그의 꿈은, 아시아에서 막혀버렸다.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했다. 꿈이 꺾였다. 그의 시합의 패배를 보며 몇 번이나 마음이 울컥했다.      


 숨이 턱까지 차는 매일의 훈련. 입술이 다 말라비틀어질 때까지의 감량. 미래의 불안. 마지막 힘을 다해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절박함. 그리고 고개를 떨구는 패배의 절망감. 12라운드, 36분의 싸움에서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마음이 아팠다. 그의 속상함을 가늠할 길 없어 전화도 한 통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운 뒤의 패배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좌절감은 지난 모든 삶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아프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안타까움과 아픔이 조금 가신 후 다시 그의 시합을 다시 돌려보았다. 찬란해보였다. 죽기 살기로 때리는 주먹에 사방으로 튄 땀과 피가 찬란해보였다. 5월의 꽃들처럼 찬란해보였다. 좌절해 있을 그에게, 비슷한 좌절을 먼저 겪어낸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패배자의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5월의 꽃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꽃이 지기 때문에 아름답듯, 복서도 지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조화에 진짜 아름다움이 없는 것도 그래서다. 조화는 ‘지지’않으니까. 누구도 ‘지지’않는 복싱 역시 아름답지 않다. 누군가는 지기 때문에 복싱도, 복서도 아름운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삶 어느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후회 없이 해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만이 진정으로 이기는 삶이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다. 비겁한 이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진실. ‘지지’ 않으려 조화처럼 긴 시간 살아왔던 나이기에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친구는 어제 후회 없이 싸웠다.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는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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