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머니의 치매 보험

내일 후회할 각오로 오늘을 살아가련다.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사는 것만큼 미련한 삶도 없다. s. spinoza


세상살이 다 아는 체 떠들며 산다. 온 몸으로 부대끼며 아는 것만큼이 진짜로 아는 것 아닌가. 이제 마흔이니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 그러니 정말 아는 체 하며 사는 것이다. 그 아는 체 중 하나는 부모와 관련된 일일 테다. 어머니는 내게 연락하지 않는다. 나 역시 연락하지 않는다. 딱히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이다. 나 역시 그녀의 삶을 모르고, 그녀 역시 나를 모른다.


 가끔 그녀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효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을 때다. ‘혈육의 정’이야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하지만 나와 그녀가 부모자식 사이로 긴 시간 함께 하며 새겨진 ‘추억의 정’이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그래서 그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그녀에게 미안하다. 그녀가 내게 해주었던 희생과 헌신들이 생각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으면 아내에게 전화한다. 자신만큼이나 무뚝뚝한 아들이 편할 리 없어서 일 테다. 아내가 어머니와 통화했던 내용을 말해주었다. 치매 보험을 가입하고 싶어 한단다.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녀가 지금 내 나이었을 때 즈음,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3년 넘게 간병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다 알았다. 치매 환자가 한 가정의 행복을 어떻게 앗아가는지. 


     

 그녀는 두려웠던 게다. 자신 역시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봐.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그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모른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한 여자의 삶에 대해. 그녀의 애환과 아픔에 대해 모른다. 아내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은 그녀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하는 두려움도, 그녀가 죽으면 어쩌나하는 두려움도 아니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부모한테 잘해"라는 세상 사람들의 흔한 조언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녀의 치매와 죽음이 도착했을 때, 때 늦은 후회를 하며 어쩌나하는 두려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동물적 본능이거나 소유욕이며,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은 사회적 훈육이거나 의존이다.” 내가 그토록 떠들어 대었던 이야기 아닌가. 세상살이 다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대었던 이야기. 그녀의 치매 보험으로 인해 두려워졌다. 나는 내가 떠들었던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녀의 치매와 죽음이 도착했을 때 나는 지금처럼 강건할 수있는지.  


 때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나는 너무 멀리 왔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사회적 훈육으로, 부모에 대한 의존으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테다. 부모의 죽음 뒤에 남겨질 후회라는 두려움 때문에 억지 효도, 거짓 효도를 하고 싶지 않다. 부모의 죽음 뒤에 후회가 찾아온다면 기꺼이 감당하며 나아가고 싶다. 언젠가 내게 남겨질 것들이 두려워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주저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할 테다.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다. 그녀를 그녀인체로, 나는 나인체로,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다. 그녀를 '어머니'로 사랑하지 않을 테다. 나는 그녀를 한 사람으로 사랑하고 싶다. 나와 한 시절을 함께한 소중한 한 사람으로. 이것이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언젠가 후회하게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어느 인디언의 성인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