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는 왜 프로복서가 되고 싶었을까?

꿈은 콤플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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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추억 그리고 ‘실전 공포증’

1980년대, 복싱이 인기 종목이었던 시절, 아버지는 복싱을 참 좋아하셨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한 기억을 물었을 때, “아버지 무릎에 앉아 복싱 중계를 보던 거요”라고 답했다. 그때가 참 좋았다. 아버지에게 안겨 있던 느낌, 아버지가 배를 만져주었던 느낌 모두 좋았다. 복싱은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의 행복한 기억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복싱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그렇게 국민 학생 꼬맹이의 꿈은 복서가 되었다.


복서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야 아버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이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가던 시절, 나는 검은색 도복으로 들고 반 지하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것이 좋았다. 퀘퀘한 냄새, 거대해 보였던 검은색 샌드백, 어떻게 손에 감는지도 몰랐던 붕대, 조금 불량스러워 보였던 체육관 형들까지 다 좋았다. 꽤 긴 시간 복싱, 킥복싱 같은 격투기 운동을 했다. 하지만 내겐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실전 공포증’이었다.


오래 운동을 했던 덕에 강한 척은 했지만, 상대와 마주서서 진짜로 치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긴장하고 겁이 나서 몸이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동네 싸움에서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아니 몸이 굳어버려 얻어터지고 온 날, 나는 운동을 포기해버렸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복싱이나 격투기로 밥벌이를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그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복싱 같은 거 다 쓸데없는 운동이야,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할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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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열심히 사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그때그때 주어진 숙제는 하고 사는 부류였다. 그 덕에 스무 살에 무난한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또 취업한파가 불어 닥친 시절이었지만, 스물여덟 조금의 노력과 적지 않은 운 덕분에 꽤 괜찮은 대기업에 들어갔다. 평범한 혹은 안정적인 삶을 사느라 복서라는 오래된 꿈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삶을 굉장히 훌륭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믿었다. 직장생활 7년, 내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서른넷이 되었다. 우울증에 걸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직장생활 7년 차에 알게 되었다. 내게 직장은 돈을 버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즐거움도 희망도 없는 곳이란 걸.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한참 흘려보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콤플렉스였던, ‘실전 공포증’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그제 서야 알게 되었다. 실전 공포증을 피해 복서라는 꿈에서 도망쳐왔지만, 사실은 삶 자체가 실전이라는 걸. 그러니까 나는 실전 공포증이 아니라 ‘삶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게다. 그것이 바로 내 우울증의 근원적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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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콤플렉스다.

꿈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은 꿈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어떤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짜 꿈을 가져본 사람들은 안다. 꿈은 지독히도 자신을 괴롭히는 콤플렉스라는 걸. 꿈에는 두 가지 종류의 꿈이 있다. 첫 번째는 지금의 삶을 합리화하는 꿈이다. 두 번째는 콤플렉스로서의 꿈이다. 기타리스트가 꿈인 두 명의 직장인 C, H를 알고 있다. C는 직장생활이 고되거나 직장생활에 회의가 찾아 들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꿈은 기타리스트야”라고. 그리고는 방 한켠에 놓여 있는 기타를 치며 불안하고 답답한 지금의 삶을 합리화한다. ‘나는 언젠가 기타리스트가 될 거야’라며. C는 첫 번째 꿈을 꾸는 부류다.


H 역시 기타리스트가 꿈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현실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리고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데 H의 집에는 기타는 고사하고 기타와 관련된 그 어떤 물건도 없다. 그에게 왜 집에 기타가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기타 쳐다보고 있으면 불편해져서”라고 답했다. 그에게 기타리스트라는 이루지 못한 꿈은 콤플렉스인 게다. 기타를 쳐다 볼 때면 마치 누군가 “넌 꿈에서 도망친 놈이잖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게다. H는 두 번째 꿈을 꾸는 부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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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삶을 합리화하는 꿈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낫다. 그런 꿈은 삶의 도피처로서 기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꿈 하나를 내세워놓고, 지금의 삶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삶, 그것보다 암울하고 불행한 삶도 없다. 진짜 꿈은 콤플렉스다. 이루지 못한 꿈은 삶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진짜 꿈을 가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 꿈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는지. 그 꿈을 외면해버리고 싶을 정도다. 마치 내면에 깊이 각인된 콤플렉스처럼. 반대로 콤플렉스처럼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자신의 꿈이 아닌 게다.


꿈은 왜 콤플렉스가 될까? 우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에서 도망쳤다는 걸. 하지만 도망치는 삶을 끝내고 꿈을 향해 달려갈 수도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들, 감내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먹고 살긴 팍팍한 월급쟁이가 기타리스트를 꿈꿀 때 그것이 어찌 콤플렉스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기타리스트는 내 꿈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리스트는 내 꿈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을 게다. 그렇게 진짜 꿈은 불편하게 짝이 없는 콤플렉스가 된다.


꿈을 이루고 싶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다.

언젠가 개그맨 윤형빈이 프로격투기 시합을 한 적이 있다. 그 시합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 아니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창피했다. 마치 누군가 내 옆에서 이리 말하는 것 같았다. “넌 비겁하게 꿈으로부터 도망쳤지만, 쟤는 당당하게 자기 꿈에 맞서고 있잖아!” 복서라는 오래된 나의 꿈은 분명 콤플렉스였다. 한 동안 나를 괴롭혔던 우울증은 결국 복서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기에 일어난 사달이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어도, 나 자신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내 콤플렉스는 ‘실전 공포증’이다. 승부의 순간에는 언제나 주저하고 몸이 굳어버린다. 그러니 삶이 실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울증은 나를 찾아왔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이 두려웠고, 삶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으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긴장되고 두렵지만, 복싱 시합에 나섰어야 했고, 동네 싸움에서 치고받았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기에 여전히는 나는 복서라는 꿈에 시달리고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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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채워진 첫 단추를 찾았다. 삶에 당당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그 첫 단추를 다시 채워야만 했다. 어린 시절 회피했던 그 꿈을 더 늦기 전에 이루어야만 했다. 아니 그건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긴 시간 지독히도 나를 괴롭혔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저주 같은 꿈을 우회하고서는 우울증을 극복할 수도, 삶을 제대로 살수도 없을 거란 걸 직감했다. 젠장, 절망적이게도, 나는 프로복서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꿈이 콤플렉스가 되는 이유는 현실 때문이다. 나도 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마흔을 앞둔 내가, 두 아이를 둔 가장인 내가, 프로복서가 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일 게다. 먹고 사는 문제, 건강상의 문제 기타 등등. 하지만 나는 기어이 프로복서가 되어야겠다. 더 이상 도망치는 삶, 콤플렉스에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성숙해진다는 건, 행복해진다는 건, 어쩌면 자신에게 저주처럼 들러붙어 있는 꿈에 당당히 맞서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콤플렉스로서의 꿈에 당당히 맞서고 싶다. 꿈으로부터 도망치는 삶,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삶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에 맞서면서 감당해야할 문제들이 어렵다면, 꿈으로부터 도망치면서 감당해야 문제들은 끔찍하다. 끔찍한 삶 보다 어려운 삶이 행복한 삶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에, 프로복서라는 꿈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 언젠가 내 아이들이 꿈에서 도망치려 할 때,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근사한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는 꿈에서 도망치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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