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소심함이라는 트라우마 너머

‘원장면’은 환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어린 시절의 ‘원장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소심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원장면’은 사후 소급적으로 구성된 환상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상’이다. ‘원장면’은 결국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다. ‘원장면’ 그 자체는 분명 (과거의 기억으로) ‘현실’이다. 하지만 이 ‘원장면’ 자체는 아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트라우마를 발현시킬 효력이 없으니까.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소급적으로 반복된 ‘원장면’이다. 이 ‘원장면’만이 트라우마를 발현시킬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장면’은 근본적으로 ‘환상’이다. 생각해보라. 뺨을 맞았던 원장면(현실)이 소급적으로 반복될 때마다 ‘원장면’은 조금씩 비대해지는 변형을 겪을 수밖에 없다. 뺨을 맞았던 순간에 그것은 “아, 씨발 짜증나네” 정도의 기억(현실)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소급적으로 반복되면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분하다. 역시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것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야.(불안‧공포)”라는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은 ‘원장면’의 소급적 반복으로 인해 구성된 환상일 뿐이다.


이제 ‘소심함’(트라우마)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알겠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환상’으로 자리 잡은 ‘원장면’은 소급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에서 비대해지고 동시에 선명해진다. 그 비대하고 선명한 환상(원장면)이 어찌 쉬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소심함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트라우마’(소심함)는 ‘원장면’ 때문에 발현되니까 말이다. ‘소심함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는 “비대해진 상태로 선명해진 환상(원장면)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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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함을 극복하는 두 가지 과정


어떻게 ‘원장면’이라는 환상을 해체할 수 있을까?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은 ‘원장면’을 포착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마다 ‘원장면’은 다 다르다. 그러니 자신의 소심함을 기원인, 저마다의 ‘원장면’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소심해진 첫 번째 원초적 기억을 찾아야 한다. 거기가 바로 ‘환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환상’을 찾았다면, 이제 두 번째 과정을 나아갈 수 있다. ‘한 걸음’이다. 환상을 해체하는 이론적 방법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번지점프는 무섭다. 왜 무서운가? 죽을 것 같은 환상에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 환상을 해체하는 방법은 한 걸음이다. 번지점프대에서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그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은 조금씩 사라진다. 소급적으로 반복된 원장면(환상) 역시 한 걸음으로 해체할 수 있다. 교수‧군대상급자‧상무‧사장의 부조리한 일에 당당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그건 부당한 업무 지시 아닌가요?” “왜 저만 야근을 해야 하죠?” 이것은 단순한 치기어린 반발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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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나’만의 ‘원장면’으로 돌아가 선생에게 다시 따져 묻는 일이다. “왜 저만 때리세요? 왜 저만 부모님을 모셔 와야 하죠?” 그렇게 지금 ‘한 걸음’을 내딛었음에도 불구하고 ‘뺨’을 맞지 않는 새로운 기억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할 말을 해도 별 일 안 생길 수도 있구나!” 그것은 소심함을 발현시킬 ‘원장면’의 소급적 구성을 멈추는 일이다. 그 새로운 기억으로 비해진 채로 선명해진 ‘환상’에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렇게 소심함은 조금씩 옅어지게 된다. 하지만 인생사가 늘 순탄치만은 않다.


이론은 쉽지만 실전은 어렵다. 그 ‘한 걸음’에 다시 ‘뺨’을 맞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은 중요하다. 그 한 걸음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원장면’에 갇혀 소심하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야박하게도, 소심한 이들 앞에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한 걸음을 주저하며 영원히 소심하게 살 것인가? 다시 뺨을 맞을 각오로 한 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한 걸음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걸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환상이 해체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걸음. 그 한 걸음으로 ‘환상’은 사라진다. 그렇게 소심함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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