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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성취의 기준은 자신이다.

성취와 망신 사이에서


성취와 망신 사이에서

프로테스트 이후 혼란스러워졌다. 그날 프로테스트는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성취였다. 스스로 규정하고 있었던 한계를 넘어서는 계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장에게는 나의 프로테스트는 일종의 망신이었던 것 같다. 이해도 된다. 자신의 체육관 이름을 걸고 나간 선수가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집어 먹고 형편없는 스파링을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나의 도전은 자랑스러워해야 할 성취였을까? 아니면 쪽팔린 망신이었을까? 그 답을 내리지 못해 프로테스트는 합격했지만,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져만 갔다.


 그 혼란스러움 끝에 알게 된 것이 있다. 왜 내가 그 긴 시간동안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는지. 내 인생은 언제나 남이 시키는 대로였다. 부모가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해서 꾸역꾸역 문제집을 붙잡고 살았고, 선생이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해서 생각 없이 대학에 갔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해서 억지스럽게 대기업에 기어들어갔다. 부끄럽지만, 그게 서른 너머까지의 내 삶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살았던 걸까? 단 한 번도 내 삶을 내 시선으로 본적이 없어서였다. 항상 타인의 시선으로 내 삶을 예단했다.


 돌아보면 나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많았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고, 만화영화도 참 좋아했다. 진지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잘했고, 친구들의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분명 잠시지만 스스로가 대견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참 많은 아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모, 선생, 세상은 내게 말했다. “그런 게 돈이 되니, 밥이 되니. 쓸데없는 일만 하고 있어” 그렇게 잠시 느낀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이내 창피함이 되어버렸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만의 잣대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폭력적으로 예단해버렸기 때문에. 그때 프로테스트 날 느꼈던 민망함과 서운함을 느꼈었다.



성취의 기준은 자신이다.


나는 이제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어찌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알겠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루며 산다. 성취가 꼭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보다 꽃을 잘 알고 있는 것,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음악을 많이 알고 있는 것,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성취다. 이런 성취들은 세속적 성공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훌륭한 성취들이다. 이런 의미 있는 성취들을 부정하고 폄하하게 된 것은 누군가 그 성취를 망신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일 게다.


 성취를 판단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남들이 시키는 삶이 아닌 진짜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게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걸 의심하는 순간, 삶의 주인의 자리를 타인에게 내주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숫자 계산만 하고 있는 은행원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를 많이 아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망신이라고 말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성취이던 망신이던 그걸 규정하는 사람이 타인이 될 때 필연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누가 보기에 망신스러워 보일 정도로 형편없는 프로테스트였지만 그것을 창피해하고 싶지는 않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성취를 대견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싶다. 오랜 시간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스스로 규정한 한계에 과감하게 한 발 내딛었고, 그 도전에 자신을 내던진 것이니까. 더 이상 나의 성취를 타인의 시선에 맡겨두지 않을 테다. 오직 나로서 좋아하고 잘하는 것, 그래서 오직 나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을 긍정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시키는 삶은 결코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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