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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아이가 된다는 것

왜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걸 주저할까?

왜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걸 주저할까?

늦은 나이에 복싱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그건 ‘왜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걸 주저할까?’에 대한 답이다. 사람들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스스로 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는 상처를 피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일이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온통 낮선 장소, 낯선 사람들뿐이다. 그러니 상처 받을 수밖에. 어린 아이가 작은 핀잔에도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이유도,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깃장을 놓는 이유도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물리적 어른이 되면, 아이와 달라지는 점이 있다. 그건 일정 정도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외부와 담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 겪게 될 상처를 미리피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낯선 상황을 만나 겪게 될 상처를 미리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가능하다면, 언제까지나 익숙한 그래서 언제나 어른인체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하긴 세상에 상처받으며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른들은 세상 모든 것에 익숙해져서 상처 따위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 아니었던가. 그런데 물리적 어른이 되어 자신만의 성을 쌓을 수 있게 되면 정말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다시는 이곳저곳에서 상처받는 아이처럼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게다. 첫사랑에서 상처를 받은 후 이제 다시는 연애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 어른으로 살 수 있을까? 이직으로 상처를 받은 후 이제 절대 직장을 떠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 어른으로 살 수 있을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물리적 어른이 되어 쌓았던 성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어느 날 한눈에 반할만한 매력적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혼자 있는 외로움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느 날 너무 해보고 싶은 일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의미 없고 바쁜 직장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때 견고하다 믿었던 그래서 자신을 상처로부터 보호해줄 거라 믿었던 그 성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성 밖으로 나서야 할 때가 온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여지없이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어린 아이가 된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아이가 된다는 것


서른이라고 마흔이라고 아니 일흔이라고 어른인 것은 아니다. 그저 세월을 흘려보내 나이를 먹는다고 상처 앞에 의연한 강건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이가 되는 경험이 충분히 쌓일 때 진짜 어른이 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때 우리는 아이가 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주눅 들고 불안하고 겁이 난다. 어렸을 때 키 큰 어른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했을 때 느꼈던 그 느낌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란 거 알고 있다. 물리적 어른이 되어 애가 된다는 느낌은 불편하다. 어디 가서 대접받아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낯선 환경에서 애처럼 주눅 들고 불안하고 겁이 나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어찌 불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흔을 앞두고 복싱을 시작했기에, 그 과정에서 정말 유치한 아이가 되어 보았기에 그 불편함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복싱을 시작하고 프로 복서가 되는, 처음 겪는 일련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상처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어른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상처를 경험하면서 어른이 된다. 단 한 번의 연애도 해보지 못한 사람은 분명 상처 받지 않는다. 동시에 많은 연애를 경험한 사람은 그 만큼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단 한 번도 직업을 바꿔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분명 상처를 덜 받는다. 동시에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본 사람은 그만큼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제 각자가 물을 차례다. 이 둘 중 누가 더 어른일까? 누가 더 삶을 당당하고 강건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어렵지 않은 질문 일 게다.


 알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또 관장에게 했던 낯 뜨거운 실수를 연발하면서 상처를 피할 수 없다는 걸.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가 되는 걸 마다하고 싶지 않다. 아이를 통과하지 않고 어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다시 아이로 되돌아가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불안정한 그래서 누구도 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삶 앞에서 당당하고 강건하게 살아낼 수 있는 근사한 진짜 어른 말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로운 일 앞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지 않은 게다.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에 나를 던지고 싶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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