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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 고통을 과장하고 싶은 욕망 I

피해의식은 과공감과 과몰입을 유발한다.

군대라는 거대한 폭력     


“아, 그때 진짜 저랬는데”     


 ‘D.P’라는 드라마를 보며 내뱉은 말이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 드라마는 군대 내의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폭력을 보여준다. 크고 작은 구타, 가족과 연인 등 내밀한 사생활 폭로를 통한 인신공격, 성추행과 성폭력 등등. ‘D.P’는 인간의 존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격마저 파괴해버릴 정도의 군대 내의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이것이 내가 섬뜩함을 느낀 이유였을까? 아니다. 내가 느낀 섬뜩함은 드라마 속 참혹한 가혹 행위들이 때문이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온 많은 남자들이 이 드라마에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공감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섬뜩함을 느낀 이유였다. 드라마를 보며 공감을 하는 것이 왜 섬뜩한 일일까? 그것은 적절한 공감이 아니라. 과도한 공감, 즉 과몰입이기 때문이다. 

     

 군내 가혹행위는 늘 있어왔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그 가혹행위의 정도는 대체로 시간과 공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선배 세대들보다 지금 세대가 가혹 행위가 덜하고, 지금 세대보다 다음 세대의 가혹 행위가 덜한 경향이 있다. 또한 동시대라 하더라도, 공간에 따라 가혹 행위의 정도는 또 달라진다. 민간과 교류가 많은 부대일수록 가혹행위가 덜하고, 민간과 교류가 적은 격리된 오지에 있는 부대일수록 가혹 행위가 심한 경향이 있다.     


 나는 20년 전에 대표적인 격리된 오지인 섬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곳에는 그 시대에 그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정도의 가혹 행위들이 존재했다. ‘D.P’에 등장한 각종 가혹행위 중에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있다. 하지만 20년 전, 섬에서도 할 수 없었던(해서는 안 되는) 가혹 행위도 분명 있다. 그런데도 드라마 속 모든 가혹 행위를 보며 “아, 진짜 그랬는데”라며 과도한 공감을 하며 과몰입하고 있었다. 



피해의식은 과공감과 과몰입을 유발한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D.P’라는 드라마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크게 공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대체로 나보다 늦게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었고, 격리된 오지에서 군 생활을 했던 이는 드물었다. 아주 불운했던 예외적인 이들을 제외하면, 그들의 공감은 분명 나와 같은 과도한 공감이고 과도한 몰입이었을 테다.  이는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왜 과도한 공감과 과도한 몰입에 빠지게 되었을까? 바로 피해의식 때문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 중,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없는 사람은 없다. 군대를 다녀 온 이들 중 쉬이 잊히지 않는 몸과 마음의 상처가 없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군대는 그 자체로 거대한 폭력의 공간이다. 상처 받은 기억이 피해의식이 된다면, 군대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피해의식 번식처도 없는 셈이다. 그만큼이나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은 크고 깊다.      


 바로 이 피해의식이 과공감과 과몰입을 야기한다. 과공감과 과몰입. 이것은 피해의식의 심각한 해악 중 하나다. 비단 군대에 관한 피해의식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돈·외모·학벌에 대한 피해의식 역시 그렇다. 이런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은 (실제든, 매체를 통해서든) 누군가 돈이 없어서, 못생겨서, 학벌이 좋지 못해서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과도하게 공감하고 그로 인해 너무 쉽게 과몰입의 상태가 되지 않던가. “나도 저랬는데.”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어!” 지금 보고 있는 상처가 실제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과공감해서 과몰입한 상태가 되어버리곤 한다.      



적절한 공감‧몰입 VS 과도한 공감‧몰입


 피해의식으로 인한 과도한 공감과 과몰입 상태는 왜 문제인가? 혹자는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크게 공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더 나아가 그 공감이 만든 몰입은 건강한 연대의식의 시작점이 될 수 있고 말한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삶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견해다. 피해의식으로 인한 과공감과 과몰입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불행을 야기한다. 과공감과 과몰입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일까?      


 먼저, 과도한 공감‧몰입과 적절한 공감‧몰입이 어떻게 다른지 부터 생각해보자. 과도한 공감‧몰입은 상대와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밀착된 상태에서 공감‧몰입이다. 반면 적절한 공감과 몰입은 상대와 적절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공감‧몰입이다.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이를 설명해보자. ‘D.P’에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래침을 먹으라고 강요하고, 초소에서 자위행위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대를 다녀온 많은 이들이 이 장면에서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다.      


 이때 적절한 공감‧몰입은 어떤 것일까? 그 참혹한 폭력은 누군가 당했을 수도 있을 일이지만, 내가 직접 당한 폭력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공감하고 몰입하는 것이다. 즉, 군대 내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겪은 일은 아니라고 적절한 거리 둔 상태에서 공감하고 몰입하는 것이 적절한 공감‧몰입이다. 과도한 공감‧몰입은 어떤 것일까? 그 참혹한 폭력을 자신이 직접 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감하고 몰입하는 것이다. 즉, 드라마 속 인물이 겪은 폭력과 내가 겪은 폭력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밀착된 상태에서 공감‧몰입하는 것이 과도한 공감‧몰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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