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걱정하고 있니? 온 마음이 간 그녀의 고통과 상처를 걱정하고 있니? 아니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상처 받을 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니? 물론 안다. 네게 이 두 가지 마음이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두 마음에 결을 쳐서 어느 쪽 마음이 더 큰지를 가늠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 가늠이 너의 진짜 마음이 어떤 지를 드러낼 테니까.
어떤 사랑도 윤리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 연인이 있는 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연인이 없는 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촉발하게 되리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랑은 없다. ‘너’가 상처 받든, ‘내’가 상처 받든, 아니면 ‘너’의 사람들이 상처 받든, ‘나’의 사람들이 상처 받든, 누군가는 ‘나’의 사랑 때문에 상처 받게 되어 있다.
그러니 네가 사랑하는(혹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연인이 있기 때문에 너 자신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랑이 주는 고통과 상처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어떤 사랑도 윤리적이다. 고민에 빠진 네게 묻고 싶다. 사랑은 무엇이냐? 사랑은 '나'를 버리는 일이다. '나'를 버리고 '너'에게 가는 일이다. '너'는 그 고통과 상처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까? 그녀에게 온 마음을 쏟았지만 결국 그녀는 다시 연인에게 돌아가 너는 혼자 남겨져도 괜찮겠을까? '너'의 사랑을 어떠한 경우에도 윤리적 사랑으로 만들만큼의 고통과 상처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까?
'나'를 지키려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나'의 습관, 관성, 태도를 지키려는 이는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을 지키려는 이들의 사랑은 금세 실망과 원망이 되곤 하지. 왜 그럴까? 그는 애초에 '나'를 버리고 '너'에게 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를 보고 싶고, '너'를 보면 설레는 그 마음은 분명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제 색깔을 찾아가며 '나'의 습관, 관성, 태도와 부딪히게 마련이다. 사랑은 몸과 마음, 삶 모두를 함께 하는 일인 까닭이다. 이것이 '나'를 지키려는 이들의 사랑은 제 색깔을 채 찾기도 전에 실망과 원망이 되어버리는 이유다.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를 사랑해도 될까요?” 이것이 너의 질문이었지? 질문이 잘못되었다. “사랑에 빠졌는데, 저를 얼마나 버릴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만이 올바른 답을 낸다. 어려운 사랑이 시작되려 하고 있니? 그렇다면 잊지 마라. 어떤 사랑도 '잘못된 사랑'은 없다. 하지만 '잘못하는 사랑'은 있다. 올바른 질문으로 다시, 천천히 고민해보거라. 조금 더 기쁜 삶은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