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도시

삼각김밥에 대한 짧은 소회

by 안소소
이상한 일이다. 삼각김밥은 왜 삼각형인가? 나는 삼각김밥의 삼각 형태는 자그마한 포유류의 구조와도 비슷하다는 주장을 한다. 즉슨 삼각김밥은 삼각형으로서 머리와 몸통의 구조를 취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삼각김밥의 한 꼬다리를 우적 베어 물음으로서 조그만 동물의 머리를 통째 우적 씹어 먹을 때의 쾌감을 느낀다. 당신도 언젠가 봄 주꾸미의 머리를 베어 물면서 맛있다고 야단을 떨지 않았나. 혹은 조금 더 연배가 있다면 한때 서울시에 즐비했던 포장마차서 내놓던 새까만 참새구이 머리통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사각이나 둥그런 형태서는 꼬다리를 베어 무는, 다시 말해 날서고 균형 잡힌 모서리를 가진 삼각의 형태를 파괴하는 전율이 없다. 수렵이 종말한 시대의 시민을 위한 대리만족이다.





John George Brown, Eating the Profits, 1878.

비릿한 전설


어느 겨울 새벽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때는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바로 이 노트북을 전당포에 맡길 정도로 궁핍했던 시절, 주머니엔 고작 이천 원 밖에 없던 것을 기억한다. 전주비빔밥이 천백 원, 참치마요가 구백 원, 치킨마요 맛이 천 원이었고 햄버거는 제일 싼 것도 이천 원 했다. 그래도 식사를 밀가루로 때우긴 싫어서 참치마요 맛 삼각김밥을 두 개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깜빡하고 물을 사지 못했는데(살 수도 없었지만), 뱃가죽이 서로 달라붙기 직전이라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계산을 마치자마자 차가운 삼각김밥을 그대로 허겁지겁 씹어 삼켰는데, 급한 탓인지 목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편의점 바닥에 털푸덕 나자빠짐과 동시에 차가운 밥알과 김 부스러기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카운터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나이 지긋한 점장이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이내 그는 알겠다는 듯 뭘 주섬주섬 챙기더니 삼각김밥과 햄버거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며 말했다.


"학생! 이거.. 폐기니까 그냥 가져가서 먹어요."


그는 내가 난생처음 먹어본 삼각김밥의 맛에 감동이라도 해서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던지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계산대에 돌아가서는 나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꺽꺽대며 도망치듯 편의점을 빠져나와 삼도천을 건너기 직전에 집에 도착해 수돗물을 마실 수 있었다. 서울 수돗물에서는 흙 맛과 먼지의 맛이 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건 초여름, 댐이 되어버린 수몰된 마을을 바라보며 먹었던 민물 매운탕의 비릿하고 탁한 향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서울 수돗물 맛이 아니라 노후화되어 녹슨 우리 집 싱크대 배관의 맛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비릿한 목메임은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 진작에 잊어버린 감각이다.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때우는 바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족을 찾을 시간은 없다.



삼각김밥을 먹고 살아요


나는 삼각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삼각김밥이 많이 나온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수십 아니 수백 가지는 될 것 같은데, 눈부신 식품공학의 발전으로 차돌박이라거나 깐쇼새우, 족발, 양념치킨, 냉채, 닭갈비, 심지어 햄버거도 삼각김밥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아주 적은 양의 내용물만 들어가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삼각김밥으로 만족해야 할 만큼 지갑이 얇을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신제품으로 나온 삼각김밥을 모두 사 먹어 본다. 여담으로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오 년 전쯤에 먹은 새우초밥 맛 삼각김밥이다. gs 편의점에서 출시된 이 삼각김밥은 초대리로 간을 한 밥에 진짜 새우가 들어 있었다. 새우는 거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정말 언젠가 타국의 먼 바닷가에서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헤엄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저 새우에 머리가 없어서 눈이 마주칠 일은 없었다는 사실을 위안삼아 다행으로 여긴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편의점의 진열대는 농경 시대의 재단을 닮았다. 삼각김밥에게 눈이 달려 있다면 꽤나 공포스러운 광경이다. 누더기를 걸친 웬 털 없는 거인들이 쿵쿵 다가와 동료들을 낚아채 사라지는 광경이라니.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야 이것은 싸구려 영양소를 갖춘 탄수화물 덩어리라거나 한국 토속신인 '밥심의 신령'에게 바치는 공물일 뿐이다. 음식을 유기체를 지속시키는 영양분으로 생각하거나 아님 밥심과 같은 주술적인 의식의 제물로 생각하거나 상관없이 삼각김밥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삼각김밥은 대충 때울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최선의 음식이다. 누군가는 좀 더 성의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삼각김밥은 먼 미래의 (아마도 미국에서 먼저 출시될) "식사 대용 알약"의 원형으로 보인다. 이거 하나만 먹으면 식사 땡!이라는 의미에서는 삼각김밥 이상 가는 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들고 다니기도 간편하고,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으며, 심지어 열량도 높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건조하게 사라진 것들에 대해


고백건대 나는 삼각김밥 사 먹는 사람이 좋다. 식사에 대한 그 무성의한 태도라거나 시니컬함이랄까 아무튼간에 뭐든 전혀 신경 안 쓴다는 듯한 느낌이 나와는 전혀 딴판이라 좋아한다. 차갑게 식은 밥을 삼키고 목이 메어 눈물을 글썽이며 일터로 떠나는 이들의 고향이 어디일까를 상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김 부스러기와 밥풀, 소금 몇 알갱이만이 남아 있다. 그 비애스러움이랄까, 이미 사라진 것의 건조한 부스러기를 생각함은 옆집이 먹고 내놓은 기름지고 축축한 짜장면 그릇을 마주하는 것보다 세련미가 있는 일이다.

아, 이처럼 모든 식사가 끝장나 버렸으면 하고 바라지만 아시다시피 먹고산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지 않던가. 나는 종종 먼 미래의 서울에선 법인카드로 삼각김밥을 사먹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때쯤이면 모든 식사는 알약으로 끝장나 버릴 것이기 때문에 삼각김밥만 한 호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꾸역꾸역 삼각김밥을 먹으며 목이 메인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또 비릿한 민물내 나는 수돗물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식사다. 눈을 닦으며 잠시 생각해 본다. 내 고향은 어디로 수몰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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