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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골목을 걷다, 골목에서 음식을 먹다

대구10미와 주전부리에 대하여


대구의 근대로와 김광석 골목을 걷는 일은 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와 추억을 따라 걷는 일이다. 옛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가 활기 넘치는 시장을 만나면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따뜻한 음식을 나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맛보는 분식 삼총사, 납작만두와 매운오뎅과 신떡 한 접시면 알싸한 겨울 추위도 거뜬하다. 

        

   

대구10미, 납작만두

                                                        

청라언덕에서 진골목까지 추억에 대하여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 대구는 십년지기 친구 같은 곳이다. 아니 10년을 훌쩍 뛰어넘는 우정이 그곳에 있다. 어쩌면 여행은 여행의 목적지보다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과 의도하지 않았던 추억과 맛있는 순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는지. 문득 길을 걷고 싶으면 대구의 추억과 함께 근대로가 기억나고 김광석 골목의 노래가 들리고 그 길을 걷다가 출출한 속을 달래주던 맛있는 시장골목이 떠오른다. 



대구10미, 매운 찜갈비


대구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근대로 여행은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대구 도심문화탐방 골목 투어의 두 번째 코스다. 동산언덕의 선교사주택을 출발해 3.1 만세운동길, 90계단,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 제일교회로에서 종로 진골목을 차근차근 걷는다. 



근대골목단팥빵



청라언덕에서 90계단을 내려오면 드라마 사랑비에 나왔던 음악다방 세라비를 만난다. 80년대의 음악다방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세라비의 뮤직 박스에는 금방이라도 장발의 DJ가 나타나 비틀즈의 음악, Hey Jude를 틀어줄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구는 큰 도시답게 얼기설기 골목길도 많다. 진골목, 약전골목, 김광석 골목 외에도 동인동 찜갈비 골목,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회무침 골목 등에는 제각기 독특한 색깔과 맛깔스러운 향기가 스며있다.

 


서문시장 칼국수 골목

  

구불구불 삶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발길은 저절로 목적지로 향한다. 햇살이 설핏설핏 내려앉는 시간, 출출한 느낌마저 기분 좋다. 유년기의 맛있는 기억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서문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문시장 칼국수

      

바람이 불어오는 곳김광석을 기억하며

근대로를 걷고 나면 서문시장이 기다리고 있고 방천시장 골목 끝에는 김광석을 추모하는 벽화골목이 있다. 방천시장 근처 대봉동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김광석의 골목길에는 그의 못다 한 꿈과 노래와 추억들이 골목길 가득 벽화로 그려졌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골목길 벽화에서 그의 기억을 찾느라 급하게 내달리던 발걸음은 어느 순간 속도를 놓치게 된다. 골목 어디에선가 문득, 그의 노래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가슴을 두드리는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애달픈 하모니카 소리와 그 어느 악기보다 아름다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대구10미, 따로국밥


그러나 김광석 길을 걷고 있으면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헛헛함으로 촉촉하게 스며들던 슬픔이 말갛게 치유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벽화 속에서 김광석은 환하게 웃고 있고 흥겹게 노래하고 있으며 포장마차에서 해맑게 소주 한 잔을 권하고 있다. 벽화에서 만나는 그의 얼굴은 인생과 사랑을 노래할 때의 얼굴처럼 눈부시다. 


북성로 연탄불고기


김광석 벽화골목을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들은 방천시장으로 연결된 길이다. 좁은 골목마다 시장 사람들의 소박하고 치열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더불어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히던 방천시장도 세월에 밀려 낙후되었다가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힘입어 천천히 살아나는 중이다.



신천시장 궁전떡볶이


슬럼화되어가던 빈 상가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오고 아담한 공방과 갤러리가 골목을 채워가고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 서쪽 골목에 다다르면 보리밥집이 있다. 4천 원짜리 착한 가격의 보리비빔밥과 칼국수를 먹을 수 있다. 그리웠던 김광석의 노래를 실컷 들으며 낮술을 한잔해도 누가 뭐라 할 일 없는 곳, 김광석 주막에서도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미진분식 김밥



길을 걷고 길에서 먹는 즐거움에 대하여

대구만큼 골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꿈결 같은 김광석 골목이 있고 매운찜갈비 골목이 있고 고소한 닭똥집 골목이 있고 칼칼한 회무침 골목이 있고 쫀득한 막창 골목도 있다. 그 골목길에 가면 음식냄새보다 훈훈한 사람냄새가 진하다.  



대구10미, 야끼우동


대구에는 맛있는 것도 많다. 오죽하면 대구 10미(味)라고 이름 붙인 음식들이 골목으로 모두 이어질까. 50년 전통의 따로국밥부터 누른 국수, 동인동 매운 찜갈비, 소고기 뭉티기, 복어불고기, 무침회, 논메기 매운탕, 막창구이, 야끼우동, 그리고 납작만두가 10미에 들어간다. 철판에 노릇노릇 구워내는 3천 원짜리 납작만두는 먹어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맛, 그 소박하고 고소한 맛이 서문시장 골목에 있다. 



대구10미, 무침회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소녀시대 입맛으로 돌아가게 하는 납작만두는 부추와 당면, 파 등을 넣다 만 듯 최소한의 속만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투명한 만두피 위로 부추와 당면이 아스라이 보이지만 만두 속이라기에는 왠지 어설프다. 그럼에도 철판 위에서 불향을 내며 구워진 납작만두에 특제 양파간장소스가 뿌려지면 맛있는 별미로 변신한다.



대구10미, 막창구이


대구에서 태어나 40년 동안 대구의 젊은 입맛을 사로잡은 납작만두는 지극히 단조로운 추억의 맛이다. 세월 따라 입맛도 변해 이제는 떡볶이의 매운 소스에 섞어 먹는 납작만두가 익숙하다. 유부에 당면과 채소를 넣고 괴나리 봇짐처럼 묶은 유부주머니는 뜨끈한 어묵국물에 담가서 부드럽게 먹는 맛이 일품이다. 쫀득하고 고소한 유부에 매끄러운 당면과 아삭한 채소의 하모니가 빈속을 따뜻하게 달래주는데, 환상의 조합이 따로 없다. 



닭똥집튀김


납작만두가 구워지는 철판 옆에는 빨갛게 고춧가루를 뒤집어쓴 양념오뎅이 먹음직스러운 고추장 국물 속에 담겨있다. 한입 베어 물면 쫄깃한 어묵에 칼칼한 매운맛이 배어 입맛을 다시게 하고 급기야는 빨간 국물까지 훌훌 마시게 한다. 양념오뎅은 납작만두의 느끼함을 사라지게 하고 납작만두는 양념오뎅의 매운맛을 덜어주니, 시장에서 인기 좋은 두 메뉴가 천생연분이다.




밥 한 끼 값으로 골고루 먹고도 디저트값이 남는다. 서문시장 유명한 호떡할매의 씨앗호떡이 골목 끝에 있다. 40여 년을 한 자리에서 호떡을 굽는 할머니의 솜씨는 장인에 가깝다. 담백하게 구워낸 호떡 한 개에 긴 하루의 여독이 달콤하게 사라진다.       


<여행 정보>

대구 ‘도심문화탐방 골목 투어’ 해설 신청 / 대구 중구청(http://gu.jung.daegu.kr

중구 문화관광과 / 053-661-2194 / 대구 경북관광안내소 053-939-0080

대구 시티투어 / 대구 관광정보센터 053-627-8900

서문시장 상가연합회 / 053-256-6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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