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입구 샤로수길에서 즐기는 미식로드
오늘은 또 어디서 한 끼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혼밥족은 서울 봉천동 샤로수길로 오라. 신선하고 화려한 비주얼의 다국적 메뉴는 나 홀로 먹는 요리마저 왁자지껄, 신명 나고 맛깔나게 차려진다. 일본·태국·인도·프랑스·이탈리아 요리는 기본이고 스페인, 멕시코, 아르헨티나에 이어 낯선 쿠바까지 대륙을 넘나드는 세계의 음식은 현지의 맛과 추억을 음미하기에 제격이다. 혼밥의 성지, 샤로수길에서 오붓한 나의 밥상을 받아 보자.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친구처럼 어울리는 골목, 샤로수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왼쪽에 관악로14길이 나온다. 요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샤로수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낙성대역까지 이어지는 골목길 약 600m를 서울대의 정문 조형물인 ‘샤’와 신사동의 ‘가로수길’을 합쳐 샤로수길이라고 이름 지었다. 샤로수길의 첫인상은 정겹고 푸근하다. 시끌벅적한 대학가와 아기자기한 가로수길의 조합이지만 재래시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좁은 골목엔 사람 냄새가 구수하게 풍긴다.
서울대입구역 근처다 보니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샤로수길은 세계 각국의 음식과 술집,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래전부터 있던 재래시장 노점상은 자연스레 흩어지고 옛 가게와 개성 있는 새 가게들이 어우러지면서 골목은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샤로수길이 형성된 것은 2010년 무렵부터다. 기존 유명 대학 상권의 임차료가 급격히 오르자 젊은 창업자들이 서울대입구역 인근으로 모여들었고 나지막한 건물에 입점해 있던 정육점이나 양복점, 미용실 사이사이에 감각적으로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의 한 끼에 집중하는 시간, 혼밥의 미덕
혼밥은 여럿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나 홀로 문화다. 자발적인 고립을 택해 여유로운 식사와 독립적인 여가생활을 즐긴다. 샤로수길의 혼밥은 한 끼의 미각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메뉴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일찌감치 샤로수길의 혼밥 문화를 선도한 규동 전문점, 지구당(地球堂)은 소고기덮밥인 규동으로 유명하다. 차분하고 편안하게 혼밥을 즐기기에 최적화된 식당이다. 샤로수길 어귀의 수제 햄버거 저니(Journey), 막걸리 카페 잡(雜) 등은 샤로수길 초반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골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 곳. 골목길에 서서 먹는 시장떡볶이나 엄마손칼국수도 간식이나 소박한 혼밥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감각적인 비주얼의 혼밥으로 유명한 에그썸(EGGTHUMB), 육첩반상, 나인온스 버거(9ounce Burger) 등은 이미 방송으로 샤로수길을 알리는 데 일조한 식당들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 가정식인 뵈프 부르기뇽과 라사냐를 내는 ‘너의작은식탁‘, 쿠바 샌드위치를 내는 ’쥬벤 쿠바(JUVEN CUBA)‘도 주목할 만하다. 골목 사이사이에 포진한 상권만 150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샤로수길에서 혼밥 메뉴 따위는 걱정 할 필요가 없다.
혼밥 먹으러 세계 여행 떠나볼까? 샤로수길 혼밥로드
매일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여행에 대한 허기를 잠시라도 풀어 주기에는 샤로수길이 답이다. 여행을 다녀온 이는 여행지의 추억과 음식에 젖어들 수 있고 여행을 꿈꾸는 이들은 잠시라도 현지의 달콤하고 이국적인 미각을 상상할 수 있다.
샤로수길 초입에서 만나는 모힝(MOHING)은 2011년부터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사랑을 받던 유럽풍 가정식 식당이다. 뷔페에서 한가득 골라 담은 접시처럼 푸짐한 브런치는 가성비 좋은 혼밥 메뉴다. 새우·양상추·토마토·올리브 등 건강한 채소가 듬뿍 올라간 ‘마왕 플랫브레드’는 피자처럼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면 여럿이 가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지글지글 게살크림파스타’는 먹성 좋은 대학생들이 열광하는 메뉴. 대학가 식당답게 점심에도 든든한 스테이크를 시켜 먹는 손님이 많다.
외관으로만 보면 태국의 야시장 골목 어귀에서 만날 것 같은 딸랏롯빠이는 태국 북부 쪽 치앙라이의 쌀국수 맛을 재현하는 누들 전문점이다. 태국과 미얀마 사람들이 찾아올 만큼 현지식에 가깝다. 실내에 놓인 작은 테이블과 원색의 플라스틱 의자가 분식집처럼 정겹다. 매일 아침 향신료를 듬뿍 넣어 끓여내는 육수는 구수하고 허브의 풍미가 살아 있다. 소고기 쌀국수와 곁들이기 좋은 ‘텃만꿍’은 직접 새우를 다져서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 인근에 사는 혼밥족의 배달주문도 많아서 큰 솥에 끓인 육수가 바닥이 나면 일찌감치 문을 닫는다. 전화 확인 필수.
노란색 외관이 눈에 띄는 텐동요츠야는 튀김 덮밥(텐동)이라는 새로운 일식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다. 라멘, 돈부리의 유행을 지나 텐동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점심과 저녁 시간마다 웨이팅이 많다. 전남 완도와 경남 통영에서 공수하는 전복과 오징어, 붕장어 등 싱싱한 해산물과 채소의 아삭한 튀김이 조화를 이루는 스페셜 텐동 추천. 165℃ 저온에서 튀겨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튀김 맛이 일품이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쌀밥 위에 튀김을 얹고 특제 간장소스를 적당히 뿌려 내는데, 고소한 튀김과 간장의 풍미가 절묘한 맛을 이룬다. 바삭바삭한 튀김 한 입에 알싸하게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더멜팅팟(The Melting Pot)은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수제 버거 가게다. 두툼한 패티 2개가 들어가서 성인 남자 양으로도 충분한 디트로이트 더블버거와 신선한 아보카도 버거가 인기 메뉴. 200g 정량을 지키는 패티는 미리 굽기의 정도를 물어보는데, 100% 소고기라서 부드러운 미디엄웰던을 추천. 당일 만들어 당일 소진하기 때문에 항상 신선한 수제 버거를 맛볼 수 있다. 직화로 구워 불향이 살아 있는 패티에 반 토막을 툭 잘라 얹은 초록색 아보카도의 비주얼이 보기만 해도 건강하다. 이국적인 인테리어 덕분에 생맥주에 ‘버맥’을 즐기다 보면 뉴요커 부럽지 않다.
마이무(MY : MOO) 스페인 식당은 빨간색 외관이 강렬하다. 붉은색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내부는 앤티크한 분위기의 소품들로 스페인 미술관을 옮겨 놓은 듯 우아하다. 주방의 통창으로 보이는 1m짜리 대형 팬에서는 점심과 저녁용 발렌시아 전통 파에야가 매일 50인분씩 만들어진다. 양을 넉넉하게 해서 점심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것도 굿 아이디어. 고소하게 볶은 쌀에 토마토 베이스와 닭고기, 새우, 모시조개 등 해물과 브로콜리, 양파 등 채소가 들어가서 푸짐한 양만큼이나 맛과 영양도 알차다. 시원한 맥주와 어울리는 다양한 맛의 핀초와 감바스가 인기 메뉴.
세계의 음식이 모여 있는 샤로수길에 카페가 빠질 수 없다. 티라노 커피, 카페 산다, 벙커컴퍼니 등 솜씨 좋은 바리스타들이 내리는 정통 커피 맛집도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달달한 디저트가 당긴다면 시장 골목 약국 앞에서 우회전, 모래내 어린이공원 앞에 있는 쁘띠크(petitque)를 찾아가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로 마카롱을 비롯, 다양한 디저트 메뉴를 개발하는 주인장은 동네 어르신 입맛에 맞는 흑임자 콩고물 마카롱도 만들었다. 마카롱은 반나절 지나면 쫀득해지고 하루가 지나면 부드러워서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 위 기사는 2017년에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이후 정보는 변경되었을 수 있으니 방문하기 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